후기 인상주의와 현대미술의 다리가 된, 이들은 누구일까?
피에르 보나르와 에두아르 뷔야르, 1867년, 1868년생의 이 두 프랑스 화가들은 20세기에도 많은 활동을 했지만 미술사에서 이들을 구분하자면 20세기 현대 미술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들은 1888년 퐁타방에서 고갱을 만나 그에 깊은 감화를 받은 폴 세뤼지에르의 추진으로 젊은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이 그룹’을 조직한다. 당시 고갱이 펼치던 종합주의(Synthetism, 형상을 단순화시키고 순수한 색조를 사용)를 따랐다.
고갱과 세잔을 존경하고 일본 미술도 좋아했던 그들은 표현상으로는 반反사실주의적이고 평탄한 색면의 대담한 화면 구성을 즐기면서도 장식적이거나 상징적인 것 등 다양한 면을 보여줬다. 1890년대가 주 활동기간인 이 그룹은 당시 포스터, 스테인드 글라스 등의 장식, 연극 무대, 도서 삽화 등에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예언자’라는 의미를 지닌 히브리어인 이 그룹의 이름은 무엇일까?
Pierre Bonnard(1867–1947), Woman with Dog, 1891, Oil and ink on canvas, 41 x 32.5 cm, Clark Museum
Édouard Vuillard(1868–1940), The Reader, 1896, Oil on Canvas, 155x21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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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나비 파(Nabis).
1888년 퐁타방에서 폴 고갱을 만나 그에게서 감화를 받은 세뤼지에(Paul Sérusier)는 고갱이 추구하던 운동의 이론을 줄리앙 아카데미 출신의 젊은 화가들에게 들려주었다. 매달 모임을 가지던 이들 그룹에게 시인 카잘리스Henri Cazalis가 ‘예언자’라는 의미를 지닌 헤브라이어 ‘나비’라는 그룹 명칭을 붙여주었다. 그들은 고갱과 세잔의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고, 미술이 자연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화가가 창조하는 은유와 상징의 종합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가졌다. 스스로 새로운 예술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Paul Sérusier (1864–1927), The Talisman, 1888, oil on wood, 27 x 21.5 cm. Musée d'Orsay, Paris
폴 세뤼지에가 1888년 10월 퐁아방에 여행을 가 고갱의 지도를 받고 그린 항구의 모습으로, 최초의 나비파 그림으로 여겨진다.
Maurice Denis, Homage to Cezanne, 1900
에두아르 뷔야르, 줄무늬 옷의 여인Le corsage rayé, 1895,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이들의 활동이 후기인상주의와 현대 회화, 모더니즘 사이에 존재하여 이후의 추상적인 현대 미술로의 전환에서 한 부분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들의 구체적인 철학에 대해서는 1890년 모리스 드니가 피에르 루이라는 가명으로 잡지에 저술한 글 “신전통주의의 정의”에서 살펴볼 수 있다.(이 글은 나비파의 선언문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그는 그림이란 본질적으로 ‘색이 덮인 평평한 표면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썼다. 이것이 그들의 최초의 아이디어는 아니었으나 그들에 의해 더 널리 퍼지게 됐다.
드니Maurice Denis 9월 저녁September Evening 1891, Musée d'Orsay
1891년 피에르 보나르, 에두아르 비야르, 모리스 드니 세 사람이 파리에 공동 작업실을 내어 초기 나비파와 예술계 인물들이 자주 방문하여 예술에 대해 논하고, 1892년에는 연극계에도 진출해 무대 세팅 디자인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나비파는 이후 1894년 툴루즈에서 단체전을 여는 등 활발히 활동하다가 1900년에 마지막 전시를 열고 흩어져 각자의 길로 나아가게 되어 10년 간의 그룹 활동은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