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젊은 여인이 장식이 있는 나무판 같은 것 위에 잘려진 사람의 머리를 얹어 들고 있는 그림이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이지만 한껏 아름답고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은 듯한 이 그림에서 머리가 잘려 죽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일까?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누구일까?
----
귀스타브 모로 <오르페우스Orpheus> 1865년, 캔버스에 유채, 154x99.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정답 : 머리만 있는 이 시체는 오르페우스. 그린 이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
이 그림의 부제는 ‘한 젊은 여인이 헤브르 지방 트라키아 강에 떠내려 온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리라를 경건하게 거둔다’이다. 지옥에서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지상으로 데리고 올라가다가 뒤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깜빡한 죄로 영원히 아내를 잃게 된 불행한 음악가 오르페우스이다.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와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아들이다. 오르페우스의 연주는 너무도 부드러워서 초목도 그에 귀 기울이고 야수도 매료되어 얌전해졌을 정도였다. 두 번이나 아내를 잃은 뒤 오르페우스는 식음을 전폐하고 슬픔에 젖어 있다가 트라키아에 왔던 디오니소스를 화나게 해 광란의 여인들 마이나스의 손에 여덟 조각으로 찢겨 죽었다. 오르페우스의 머리는 헤브로스 강에 던져져 (죽은 후에도) 노래를 부르면서 바다로 흘러 들어갔고, 레스보스 섬 해안에서 발견되어 섬 사람들이 잘 묻어주었다고 한다. 그의 리라는 밤하늘에 올려져 거문고자리가 되었다.
신화는 이 정도까지인데, 화가 귀스타브 모로는 이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2차 창작을 가했다. 트라키아의 한 소녀가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물에서 수습해 리라 위에 얹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이다.
귀스타브 모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상징주의 운동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오르페우스>처럼 그리스 로마 신화나 종교적인 주제를 낭만주의적, 상징주의적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 프랑스에서는 인상주의의 씨앗들이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다가 합쳐지기도 하는 때로, 모네는 외광파 회화를 연습하고 살롱에서는 마네의 그림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미래 인상주의 구성원들이 카페 게르부아에 모이고 회화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하던 때다. 모로는 낭만주의를 되살려내면서 상징주의라는 무기를 가지고 이 인상주의자들이나 사실주의자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갔고, 그가 다리 역할을 하면서 이후 현대미술은 초현실주의나 표현주의, 크게 보아 추상미술에 까지 이어지는 이행을 겪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