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디트는 카톨릭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여성이다. 이스라엘의 정숙한 과부였는데, 승승장구하던 앗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가 쳐들어오자 아름답게 치장하고 그를 찾아가, 자신에게 반한 홀로페르네스를 취하게 하여 잠든 틈에 칼로 그의 목을 베어 죽인 후, 그의 머리를 들고 하녀와 탈출에 성공했다는 활약상으로 여러 화가들이 이 이야기를 그림에 담았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왼쪽 그림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며, 오른쪽은 유명한 선배 화가가 그린 같은 주제의 또다른 그림이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왼쪽 그림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이며, 오른쪽은 유명한 선배 화가가 그린 같은 주제의 또다른 그림이다.
아르테미시아에게 기법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유디트 주제의 그림을 남긴 시대의 거장은 누구일까?
① 티치아노
② 렘브란트
③ 들라크루아
④ 카라바조
⑤ 쿠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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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미술의 걸작에서 여성 화가의 작품은 아주 드문데, 피렌체 국립미술원 첫 번째 여성회원이 될 정도로 당대의 주요 화가로 자리잡았던 독보적 인물이 바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다. 한동안 잊혀졌다가 현대에 와서 크게 주목받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자화상> 1638-39 97x74cm 로열 컬렉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유명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1563-1639)에게서 어릴 때부터 그림을 배웠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공방에 불러 딸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는 했으나 교육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지 어른이 되어서도 읽고 쓰는 법을 몰랐다고 한다.
18살 때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강간을 당한다. 타시는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약속을 했다가 그마저도 어기고 아버지 젠틸레스키와 소송을 벌였는데, 그녀는 피해자이면서도 재판 기간 동안 자백을 강요당하며 고문을 받는 처참한 상황을 버텨야만 했다. 결국 타시는 추방령을 받았으나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열정적이며 강렬한 대비를 특징으로 하는 그녀의 화풍은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카라바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젠틸레스키 부녀 모두 그의 작업 방식을 따르기도 했다. 그녀보다 먼저 카라바조가 유디트 이야기를 화폭에 담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1612-21 200x163cm 우피치미술관
카라바조(1573-1610)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1598-99 145x195cm 로마 국립회화관
정답은 ④ 카라바조.
잘 알려진 대로 카라바조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결투를 벌여 지인을 죽이고 도망다니다가(그러면서도 그림 주문을 받고 그려주는 생활을 한다) 사면을 구하러 로마로 돌아오는 도중에 열병으로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에 사망한다.
카라바조 등의 화가들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주제로 그림을 그렸으나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는 자신의 경험과 성별 덕에 남다른 시각을 보여준다고 여기게 된다. 카라바조가 그녀보다 더 위대한 화가일지는 모르나, 이 그림만큼은 폭력과 고통으로 얼룩졌던 그녀의 인생에서 끌어올려진 힘인지 아르테미시아의 작품에서 생동감과 치열함이 더 많이 드러나는 듯하다. 적어도 카라바조의 유디트처럼 수동적인 자세는 아니다.
아르테미시아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는 몇 가지 버전의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아르테미시아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는 몇 가지 버전의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트> 1612-1613경 158.8×125.5 cm 나폴리 카포디몬테 미술관 Museo Capodimonte
지난 2월, 게티 뮤지엄이 17세기 이탈리아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작품 한 점을 그림을 구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림의 주인공인 루크레티아Lucretia는 성폭행을 당했던 화가 아르테미시아와 마찬가지로 강간당한 후 자살했던 고대 로마의 전설적인 여성이다. 이 또한 같은 주제로 다른 버전의 그림도 남겼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루크레티아> 1627 92.9×72.7cm 게티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