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옷을 걸치지 않은 거대한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왼쪽 어딘가를 향해 서 있다.
한 팔을 위협적으로 든 뒷모습으로 수염이 가득한 얼굴은 일부 외에는 보이지 않고, 다리는 산으로 가려지고 옅은 구름이 엉덩이와 허리를 감싸고 있다.
이 사람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거인인 것은 아래쪽 그림을 자세히 보면 보다 확실해진다.
산 아래에 펼쳐져 있는 평야에 개미처럼 작아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차와 말을 타고 황급히 이동하느라 바쁘다.
옛이야기나 판타지소설과 영화에 등장할 것만 같은 장면을 그려낸 이 작품은 <거인>이라는 제목 외에 또다른 부제가 있다.
그 부제는 무엇일까?
① 멸망의 날 ② 수호신 ③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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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거인The Colossus> 1808–1812, 캔버스에 유화, 116x105cm, 프라도미술관
18세기와 19세기를 살다 간, 거장 반열에 오른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1828)가 1812년에 완성한 그림이다.
고야는 스페인 왕궁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독일의 신고전주의 화가 안톤 멩스(Anton Raphael Mengs, 1728-1779)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점차 자신의 개성을 찾아가면서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짙어졌다. 이 작품 <거인>은 그러한 경향과 함께 그의 상상력과 표현 능력, 개성을 보여주는 강한 인상의 작품이다.
고야는 평생에 걸쳐 1870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900점이 당대의 현실을 다룬 것이라고 분석될 정도로 자신이 살았던 사회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그의 그림에서 밝고 즐거운 느낌을 받기 어려운 것은 그의 성향과도 관계가 깊다. 그는 질병으로 인해 청각 장애를 얻었고 그로인해 우울한 성향이 더욱 짙어져 말년의 그림은 더욱 더 그로테스크해졌는데, 그의 개성을 드러내는 독창적인 화풍은 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등 현대 모더니즘 미술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이 그림은 한 거인과 공포에 질려 달아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거인은 마을 사람들을 등지고 있어서 다소 해석의 여지는 있으나 사람들은 거인의 모습만으로도 겁에 질려 정신없이 도망가기 바빴을 것이다. 이 작품 <거인>의 부제는 ‘공포’. 답은 3번이다. 무엇에 대한 공포일까, 거인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어떤 현실 상황을 표현하고자 제작했을 <거인>. 당시 스페인 사람들에게 끔찍한 기억을 남긴 나폴레옹의 침략과 학살의 공포를 담은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1807년 12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13만 명의 프랑스 군대를 스페인 영토로 밀고 들어왔다. 이듬해 봄 이들이 마드리드를 장악했으며, 6월에는 왕인 페르디난드 7세를 폐위시키고 자신의 동생 조셉을 스페인 왕위에 앉혔다. 스페인 국민들과 프랑스 점령군 사이에는 끊임없는 게릴라전이 벌어지게 되고 이 싸움은 1808년 5월 2일 시민들의 봉기로 절정에 달했다. 다음 날인 1808년 5월 3일 프랑스 군대는 저항한 마드리드 시민들을 처형했다. 고야의 가장 유명한 그림 <1808년 5월 3일> (1814년, 345x260cm)은 바로 외국 군대가 들어와 일반인들을 대량 학살한 이 날의 끔찍한 사건과 비인간적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