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 델프트 풍경Gezicht op Delft, c. 1660–1661,
Oil on canvas, 98.5 x 117.5 cm,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Mauritshuis, Hague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는 수많은 그림들이 등장하지만, 그중 <델프트 풍경>의 등장은 매우 인상적이다. 소설 속 인물이 이 그림을 보다 숨을 거두기 때문이다.
프루스트는 헤이그에 있는 미술관에서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을 본 이후 미술비평가 보두아예Jean-Louis Vaudoyer 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써 보냈다. 보두아예가 베르메르에 대한 글을 막 발표한 시점이었다. 프랑스에서 베르메르가 연구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 후반이니 20세기 초 당시의 베르메르는 지금처럼 거장 대열에 낄 만한 명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프루스트가 처음 델프트 풍경을 본 것은 1902년이며, 1921년 파리에서 열린 네덜란드 거장전에서 보두아예와 함께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심지어 실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프루스트는 이 사건에서 힌트를 얻어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 「갇힌 여인」 부분에 작가 베르고트가 그림을 보다가 죽음에 이르는 장면을 묘사했다.
소설 속에서 베르고트라는 인물은 <델프트 풍경>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떤 기사를 읽다가 이 그림 속 특정 부분이 특히 잘 그려졌다는 것을 읽고는 그 부분이 어디였는지 생각나지 않아서 몸이 좋지 않은데도 전람회장을 찾아가게 된다. 마침내 그림 앞에 서서 ‘그 부분’을 발견하고 눈을 뗄 수 없었고 현기증을 느끼다 쓰러진다.
소설 속 기사글에서는 “그 부분만 따로 떼어 놓고 보아도 중국의 귀중한 미술품같이 아름답다”고 했으며, 작중 베르고트가 “마치 어린아이가 노랑나비에 끌리듯 이 부분의 마티에르에 끌렸다”고 말한다.
소설이 유명해진 이후 현재까지도 많은 관객들은 이 작품을 만나면 ‘그 부분’을 먼저 찾아본다고 한다.
해당 부분은 그림 중 어디일까?
① 강 이쪽 모래톱의 인물들
② 시계가 있는 건물 첨탑
③ 햇빛을 반사하는 건물 벽
④ 높이 솟은 교회의 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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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프트라고 하면 현재는 이케아 본사, 중국 청화백자를 모방, 발전시킨 델프트 블루도자기, 유명 기술대학과 과학연구기관들로 알려진 도시이다. 베르메르가 살던 시대에는 중요한 상업도시였으며 그는 1632년 이곳에서 태어나 43년을 살면서 30여 점의 그림만을 남겼다. 대부분 실내의 여인들 모습을 담은 그림을 그렸고, 실외를 그린 것은 <골목길>과 이 <델프트 풍경> 밖에 없다. 베르메르는 최대한 실제와 유사한 모습의 표현을 위해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광학 장치를 활용해 맺힌 상을 캡쳐하여 그림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 가운데 첨탑은 Nieuwe Kerk ("New Church")이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중 관련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아주 경미한 요독증의 발작 때문에 그는 안정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비평가가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 베르고트가 매우 좋아하는, 그리고 구석구석까지 잘 안다고 여기는 이 <델프트 풍경> 속에 작은 노란색 벽면(바로 이것이 생각나지 않았다)이 참으로 잘 그려져, 그것만 따로 떼어놓고 보아도 어떤 중국의 귀중한 미술품처럼 그자체로 충분한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고 하는 기사를 썼기 때문에, 베르고트는 감자 몇 개를 먹고 나서 집을 나서 전람회장에 들어갔다. 그는 처음 몇 계단을 오를 때부터 바로 현기증이 났다. 그는 몇몇 그림 앞을 거쳐 갔다. 그것들이 극히 틀에 박힌 무미건조한 궁전이나 혹은 해변에 서 있는 한낱 평범한 인가에 스며드는 통풍이나 햇빛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베르메르 그림 앞에 섰다. 그의 기억으로는 더 눈부시고, 그가 알고 있는 뭇 그림과 더 동떨어진 것이었는데, 그래도 비평가의 기사 덕분에 그는 처음으로 푸른 작은 인물이 몇몇 있는 것, 모래가 장미색인 것을 주목하고, 드디어 작은 노란색 벽면의 값진 마티에르를 발견했다. 그의 현기증은 더욱 심해졌다. 어린이가 노랑나비를 붙잡으려고 할 때처럼 그는 그 소중한 작은 벽면에서 그의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도 저런 식으로 글을 써야 하는데”하고 그는 생각했다. “내 최근의 작품은 너무 무미건조해. 이 작은 노란색 벽면처럼 몇 번이고 물감을 덧칠해서 내 문장 자체를 소중한 것으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러는 동안에도 심한 현기증은 가시지 않았다. 하늘에 걸려있는 저울의 한 쪽 접시에 자기 자신의 생명이 실려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 다른 한 쪽에는 노란색으로 그렇게도 잘 그려놓은 작은 벽면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는 그 벽면을 위해서 무모하게도 자기의 생명을 희생했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석간신문에 실릴 이 전시회의 삼면 기사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다”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그는 “차양 달린 작은 노란색 벽면, 작은 노란색 벽면”하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다 그는 둥근 긴 의자 위로 쓰러졌다. 그래도 문득 자기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는 생각보다 낙관적인 기분이 들어서 “설익은 감자를 먹은 게 체했을 뿐이야 그런 건 대수롭지 않아”하고 중얼거렸다. 새로운 발작이 다시 엄습하자, 그는 긴 의자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곳으로 관람자들과 수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는 죽은 것이었다.
‘(햇빛이 반사되어) 노랗게 빛나는 벽의 작은 조각little patch of yellow wall’. 노랗게 빛나는 벽은 그림 우측 가운데 부분에 세 곳이 있다. 이 중 가장 왼쪽, 어두운 건물들 뒤로 환히 빛나는 네모진 건물벽이, 두터운 마티에르의 그 포인트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들이다.
죽음에 이르고 있음에도 계속 볼 수밖에 없도록 한 인물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소박한 작은 벽면의 모습이었다. 정답은 ③번.
구글 아츠 앤 컬쳐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통해 덧칠한 노란 벽의 마티에르를 감상할 수 있다.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view-of-delft-vermeer-johannes/CgGsQh01dnFdDQ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 7시 10분은 아마도 아침. 동쪽인 오른쪽에서 빛이 비추고 있다. 막 떠오른 해가 비추는 빛이 도시를 감싸는데도 이 도시의 모습은 지나치게 정적이고 고요해서 거리감이 느껴진다. 아래 그려진 작은 인물들에도 불구하고 죽은 도시처럼 느껴져서 이 작품 <델프트 풍경>을 ‘풍경의 정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물은 Nature morte, 죽어있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 앞에서 죽음을 맞는 베르고트는 벽면에 반사된 황금색 햇빛을 사신의 메시지로 받아들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