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쓴 여인이 줄을 잡고 있다. 이 줄은 익룡같이 생긴 괴물의 목에 연결되어 있고, 오른쪽 기사가 이 괴물을 창으로 찔러서 피가 흐른다. 배경은 너른 들판에 그믐달이 떠 있고, 왼쪽은 동굴 오른쪽 기사 뒤에는 태풍의 눈 같은 구름이 휘돌고 있다.
백마탄 기사와 공주, 용과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를 그린 르네상스 초기의 그림이다.
그림에서 용을 무찌른 이 기사는 누구일까?
① 대천사 미카엘
② 성 게오르기우스
③ 페르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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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에서의 용과 달리 서양의 용은 대개 나쁜 의미를 지닌다. 라틴어에서는 뱀과 용을 둘 다 Draco로 쓰기 때문에 용과 뱀이 혼동되기 쉽기도 했다. 뱀이 악마나 이단의 상징이었으므로 용도 마찬가지였다. 서양의 신화나 종교 이야기에서 용과 싸워서 승리한 용사는 대천사 미카엘, 성 게오르기우스,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 등이 있다.
이 그림은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1397-1475)가 1470년 경에 그린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이다. 정답은 ②번
* 파올로 우첼로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 c.1470, 캔버스에 유화, 55.6×74.2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성 게오르기우스 또는 성 조지(Georgius, Saint George, ?-303)는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로, 14성인 중 한 사람이다. 축일은 4월 23일. 성 게오르기우스를 수호성인으로 하는 나라로 잉글랜드, 조지아 등이 있고, 모스크바는 게오르기우스를 수호성인으로 하는 도시이며, 기사, 군인, 활, 검을 다루는 사람, 보이스카우트의 수호 성인이기도 하다. 옛 유럽 그림에서 칼이나 창으로 용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성 게오르기우스에 대한 이야기는 성인 이야기의 총합인 『황금 전설Legenda aurea』에 나온다. (황금전설은 대주교에까지 이른 한 도미니코회 수도사가 복음서 안의 여러 일화들을 축제일에 맞도록 재구성해 1292년에 집필한 것이 원전이고 인기를 끌어 수세기에 걸쳐 베껴지며 증보됐다. 많은 화가들이 이 안에서 주제를 찾아 그림을 그렸다.)
성 게오르기우스는 그에 관한 이야기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그가 용에게 바쳐진 한 공주를 구해낸 이야기이다. 성 게오르기우스의 용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로마제국 말기 아프리카 북부 리비아에 시레나 부근 호수에 독을 뿜어내는 용이 살기 시작하고 많은 시민들이 다치게 됐다. 사람들은 매일 양 두 마리를 바쳐 용을 달랬으나 양이 줄어들고 요구는 계속되어 시민들은 양 한 마리와 제비뽑기로 당첨된 젊은이를 제물로 바치기로 결정했다. 젊은이들이 차례로 제물로 바쳐지고, 어느 날 시레나 왕의 외동딸이 당첨됐다. 어쩔 수 없이 호숫가에 간 공주가 울고 있을 때 먼 데서 무장한 기사, 성 게오르기우스(성 조지)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사정을 들은 게오르기우스는 용으로부터 그녀를 구출해줄 것을 약속했고, 바로 그때 호수에서 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게오르기우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괴물의 몸에 긴 창을 찔러 넣었고, 용은 쓰러졌다.
게오르기우스는 공주에게 "겁내지 말고 네 허리띠를 풀어 용의 머리로 던져라."라고 말했고, 공주가 허리띠를 던져 용의 목에 씌워지자 용은 순해져 그녀의 발밑에 엎드렸다. 그들은 용을 데리고 시레나로 갔다. 게오르기우스는 두려움에 떠는 시민들에게 "두려워 말라. 신은 용을 죽이도록 하기 위해 나를 이 땅에 보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으라."고 말했고, 감동한 왕과 2만 명의 시민들이 세례를 받았으며, 이 과정이 끝나자 게오르기우스는 단칼에 용을 죽였다. 이를 감사하며 왕이 지은 교회 제단에서 물이 솟아 나왔는데 이 물을 마신 사람들의 병이 치유되기도 했다. 국왕이 감사의 의미로 게오르기우스에게 하사한 재물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펴도록 왕에게 당부한 뒤 다시 말을 타고 황야 저편으로 사라졌다는 이야기.
파올로 우첼로의 그림에서는 창에 찔린 채 두 다리로 서 있는 용을 공주가 자신의 벨트를 풀러 목줄처럼 붙잡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걸려진 그림으로 성 조지는 잉글랜드의 수호성인이기에 더욱 인기가 있다. 이전에는 비엔나의 Lanckoroński 백작의 소유였다가 1959년 팔렸다.
<성 게오르기우스와 용>은 고딕풍인 파올로 우첼로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그림이다. 파올로 우첼로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의 대표 화가로 기하학적 구도와 과감한 원근법을 강조한 그림들을 제작했다. 조르조 바사리는 우첼로에 대해 ‘그가 원근법에 애쓴 시간만큼 인물과 동물 연구에 시간을 바쳤다면 조토 이래 가장 매혹적이며 영감이 풍부한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며 그의 다소 딱딱한 동물 인물 표현에 뼈 때리는 말을 남겼다.
그가 형태의 표현에서 원근법을 중시했다는 것은 이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치하고 있는 게오르기우스의 말과 용이 그림에서 옆모습으로 그려지지 않고 정면에서 약간 비스듬한 방향을 향해 있는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동물의 앞뒤 크기를 조절해 공간을 차지한 대상물의 형태를 표현해내는 자신의 기량을 드러냈다.
상상의 동물이기는 하지만 동양의 용이 거의 비슷한 모습인 것과 달리 서양 그림에서의 용은 작가마다 자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그려진다. 우첼로의 용은 딱딱하고 날개에 동심원이 그려져 있으며 돼지꼬리처럼 말린 꼬리와 앞발이 없이 뒷 두 발로 서있는 형태가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