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The Abbey in the Oakwood(Abtei im Eichwald)> 1809-10, 캔버스에 유채, 110.4 x 171 cm, 국립미술관, 베를린Alte Nationalgalerie, Staatlichen Museen zu Berlin
이 우울한 그림을 그린 이는 독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
이 그림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을 그릴 때 프리드리히는 다른 그림의 연작으로 계획했다. 첫 전시도 그렇고 현재에도 미술관의 한 벽면에 한 쌍으로 디스플레이 되어 관객을 맞고 있다.
이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과 짝을 이루는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
① 눈 속의 떡갈나무
② 산 중의 아침 안개
③ 바닷가의 수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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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로 분류된다. 프랑스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났던 독일 낭만주의는 어느 정도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띄게 됐다. 신고전주의가 역사와 신화, 인물화에 집중했다면 이들은 풍경화에서 그 성격을 많이 드러냈다.
우주, 자연, 철학적인 사고와 감정을 풍경에 투사한 대표적인 화가 프리드리히는 드넓은 바닷가에 홀로 있는 수도사(<바닷가의 수도사>)나 거친 파도를 바라보는 신사의 뒷모습(<안개 바다위의 방랑자>) 같은 사색적인 그림으로 유명하다.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 1818, 95x75 cm, Hamburger Kunsthalle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이 발표된 1810년은 독일이 나폴레옹에게 지배되던 때였다. 프랑스 군대가 엘데나 수도원 인근을 점령하고 요새를 짓기 위해 수도원을 파괴했다. 그림 속의 장례 행렬은 아마도 전쟁과 죽음, 국가의 패망을 의미했을 테고, 떡갈나무는 게르만 민족을 상징하는 도구로 종종 쓰였다. 고딕 양식의 건물이 독일의 전성시대를 상징한다면 그 폐허는 절망적인 상황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리드리히는 적극적으로 민족주의 자유주의 운동 등에 참여하는 사람이었고, 탄압으로 인해 교수직에 선출되지 못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의 사색적인 그림에도 정치색은 짙게 배어나온다. <안개 바다위의 방랑자>에 등장하는 남자가 입은 옷은 애국 대학생 단체인 부르셴샤프트 단복이다.
바닷가의 수도사The Monk by the Sea, 110x171.7cm
이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은 그가 30대에 그린 초기 그림으로, <바닷가의 수도사>에 이어 연작으로 구상한 작품이다. 두 작품의 배경은 상이하지만 몽환적인 분위기나 우울하고 사색적인 느낌을 공유한다. 지금 보면 두 그림 모두 매우 현대적이고 영화적이기도 하다. 당시 다른 화가들과 다른 참신함이 돋보였을 텐데 이후에야 낭만주의 작품을 대표하게 되었다.
두 그림 모두 1810년 베를린 아카데미전시회에서 첫선을 보였고 당시 황태자의 요청으로 프리드리히 빌헬름3세의 소유가 되었다. 수 년 전 정밀한 복원 수리 과정을 거쳐 현재도 나란히 걸려 있다.
정답은 ③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