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톨레도의 한 수도원 제단을 장식했던 제단화이다. 17세기 스페인 펠리페 2세의 궁중화가였던 엘 그레코의 작품이다. 하나님 주위에 천사들이 예수의 시신을 떠받치면서 비통에 젖어 있는데, 해부학적으로 고려된 신체 묘사를 보여준다.
엘 그레코 <성 삼위일체 Holy Trinity> 1577–1579, oil on canvas, 300x179cm, Museo Nacional del Prado
엘 그레코는 화가의 본명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이 부르던 별명이다. '엘 그레코'의 의미는 무엇일까?
① 탐욕스러운 사람 ② 위대한 사람 ③ 그리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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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는 그리스 태생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한 화가이다. 17세기 르네상스 말기 에스파냐의 펠리페 2세의 궁중화가였고 당시 메너리즘으로 분류된 그의 화풍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화풍은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 Δομήνικος Θεοτοκόπουλος )로, The Greek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엘 그레코는 스페인어로 '그리스 사람'이라는 뜻의 별명이다. 그는 당시에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였던 크레타에서 출생했다. 서른 살이 되기 전, 1570년에 로마로 이주하여 이탈리아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매너리즘과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요소가 그의 작품에 삽입됐다. 티치아노에게 비우고, 틴토레토,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초기에는 인체 비례 등에 정확하고 사실적 묘사를 보인다.
1577년 스페인 톨레도로 이주하는데, 이때부터 주요 작품의 주문 제작이 시작됐다. 위의 그림 <삼위일체>는 그가 톨레도에 도착하여 스페인에서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주문받아 그린 것으로 이탈리아적인 성향이 아직 남아 있다.
그의 주된 작품들은 드라마틱하면서 표현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동시대 사람들은 아마 의아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쁜 의미로)매너리즘 미술로 평가절하되기도 했지만 19세기에 재평가의 기회를 얻었다. 폴 세잔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독일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20세기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찬사를 받아 표현주의, 입체주의 등의 선구로 여겨진다. 그의 개성적인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의 시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그의 주된 작품들은 드라마틱하면서 표현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동시대 사람들은 아마 의아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나쁜 의미로)매너리즘 미술로 평가절하되기도 했지만 19세기에 재평가의 기회를 얻었다. 폴 세잔 등에게 영향을 주었고, 독일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기도 한다. 20세기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더욱 찬사를 받아 표현주의, 입체주의 등의 선구로 여겨진다. 그의 개성적인 작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니코스 카잔차키스 등의 시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나타나지 않지만 점차 그는 비잔틴 전통을 서양회화의 전통과 결합시켜 독특한 형상의 인체들을 그려낸다. 극도로 길쭉한 인물을 환상적이며 기묘한 색으로 표현하여 그만의 개성있는 화풍을 만들어냈다. 회색 명암 색채, 비정상적으로 길쭉하고 뒤틀린 인체묘사가 그의 인물들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은 종교화나 초상화가 주가 된다.
엘 그레코 <오르가즈 백작의 매장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 1586-1588, oil on canvas, 4.8x3.6m, Iglesia de Santo Tomé, Toledo, Spain
꿈에 그리던 궁중화가가 되었으나 펠리페 2세가 그의 화풍이 마음에 안 든다며 그만 두도록 했다.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한 이후 평생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고, 에스파냐 왕궁이 떠난 뒤에도 톨레도에 계속 거주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