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멀리 해가 기울고 있는 바닷가를 그린 풍경화다. 평화로운 바다에 범선들이 떠 있고, 저 멀리 우묵한 항구에 붙어 있는 집들, 먼데 섬도 보인다.
그런데 화면의 1/4을 차지하고 있는 전경이 가지는 존재감이 크다. 밭을 갈고 있는 농부의 모습인데 손바닥 만해 보이는 밭을 말이 끄는 쟁기로 엎고 있다.
언덕을 내려가는 듯이 그린 말의 뒷모습, 반죽같이 생긴 밭의 흙, 과장된 인물의 크기 같은 것들이 조금 생소한 느낌을 준다. 그 언덕 밑으로 개와 양치기가 역시 손바닥만한 언덕에서 양들을 몰고 있는데, 왼쪽 위의 하늘의 무언가에 넋을 놓고 있다.
이 그림은 그런데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주제로 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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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대(大)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hel de Oude(the Elder), 1525-1569)이 1558년 경에 그린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이다. (아들 피테르도 화가이기 때문에 The Elder/대(大)를 붙여 부른다.)
대(大) 피테르 브뢰헬,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있는 풍경> 1558년경, 캔버스에 유화, 73.5x112cm, 벨기에 왕립미술관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oil on canvas mounted on wood, Royal Museums of Fine Arts of Belgium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이카로스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크레타 섬에 유배되어 있던 미로를 만든 장인 다이달로스에게는 이카로스라는 아들이 있었고, 고향으로 가는 탈출을 계획하며 새의 깃털을 모아서 날개를 만들어 밀랍으로 몸에 붙여 날아서 섬을 탈출하기로 했고, 비행연습을 거쳐 함께 탈출하는데 아버지 다이달로스는 아들에게 ‘태양에 가까이 가면 밀랍이 녹으니 너무 높이 날지 말고 너무 낮으면 바닷물 때문에 날개가 무거워지니 중간으로 날아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꼼꼼히 일러줬으나 으레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기분 좋아 높이 날다가 바다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제목을 보지 않고 이 그림을 대한다면 그저 조금 독특한 풍경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시금 그림을 살펴보면, 다이달로스는 등장하지 않지만 오른쪽 아래 구석에 바다에 고꾸러진 사람의 다리가 이카로스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위로 밀랍이 녹아 분해된 깃털들이 날리고 있는 것도 보인다.
농부는 이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고, 이카로스 근처 바닷가에서 낚시질 중인 낚시꾼도 뒷모습 뿐이긴 하지만 그다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양치기는 하늘을 바라보고는 있으나 다이달로스가 나는 것을 감탄하며 보고 있는 것인지 이카로스 방향은 보지 못했다. 그림에 있는 사람들-농부, 양치기, 낚시꾼은 신화 원문에도 등장한다.
“다이달로스는 날개를 치면서 동시에 뒤에 있는 아들을 돌아다보았다. 흔들리는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으려던 낚시꾼, 지팡이에 기대 서 있던 목동, 쟁기 자루를 잡고 있던 농부 등은 이 광경을 보고 놀라서 입을 벌렸다. 공중을 날아가고 있는 다이달로스 부자를 신이라고 생각했다....이카로스는 자신의 과감한 비행을 즐기면서 아버지의 궤도에서 이탈했다. 하늘 높이 날아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아주 높은 길을 선택했다. 뜨겁게 이글거리는 태양이 바로 옆으로 다가와, 날개를 이어 주는 냄새도 좋은 밀랍을 녹여 버렸다. 그러자 날개 전체가 흩어져 버렸다. 이카로스는 맨팔을 뒤흔들었으나, 부력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전혀 공중에 뜰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 이름을 외치면서 푸른 물속으로 추락했다.“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중)
* 다른 버전의 그림에서는 하늘을 날고 있는 다이달로스의 모습이 그려진 것도 있다.
Landscape with The Fall of Icarus, ca. 1590–95, oil on wood, Museum van Buuren, Brussels, Belgium
아무도 이카로스의 불행과 절망을 알지 못하고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듯이 표현되어 있고, 감상자가 이카로스를 발견하는 것을 친절히 유도하고 있지도 않다. 커다란 범선 때문에 이카로스에게 주목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이카로스의 추락과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대조시킨 것이 이 그림의 포인트. 한 미술사학자는 이 그림 속에 플랑드르 속담인 ‘사람이 죽는다고 쟁기가 서는 법은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And the farmer continued to plough..." (En de boer ... hij ploegde voort")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되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대 피테르 브뢰헬은 농촌에서 전해지는 속담에 관심이 많았던지 그의 그림 속에 속담의 내용을 넣은 경우를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는데,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플랑드르 속담> 그림 안에는 100개가 넘는 속담이 들어 있다고도 한다.
대 피테르 브뤼헬 <네덜란드(플랑드르) 속담> 1559, 나무패널에 유화, 117x163cm, Berlin State Museums
농민과 농촌의 모습을 많이 그려 흔히 농민화가로 불리지만 대 피테르 브뤼헬은 농촌 출신은 아니다. 현재 네덜란드 땅인 브레다 근방 브뢰헬에서 태어나 1551년 안트베르펜 화가조합에 등록된 바 있던 플랑드르 화가이다. 1563년 결혼하며 브뤼셀로 이주해서 브뤼셀에서 살았다. 판화에서 시작하여 회화로 점차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그의 그림은 약 45점이 전해지며 〈바벨탑〉, 〈농부의 혼인〉, 〈눈 속 사냥꾼〉 등이 특히 유명하다. 큰 아들 소 피테르 브뤼헬(Pieter Brueghel de Jonge)과 작은 아들 대 얀 브뤼헬(Jan Brueghel de Oude)은 정교한 정물화로 유명하다.
눈속 사냥꾼 등 그 이후의 그림들이나 다른 계절 풍경화 시리즈는 인물의 크기가 이 작품처럼 크지는 않다. 시선을 강하게 끄는 쟁기질 하는 농부는 랭부르 형제의 <베리 공작의 아주 호화로운 달력>에 등장하는 농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베리 공작의 아주 호화로운 달력> 3월. 콩테미술관 소장
그가 농민 모습을 많이 그렸던 것은 후원자들의 주문에 의한 것인데, 16세기 당시 플랑드르 미술에서 풍경화와 장르화가 인기를 끄는 변화가 있었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상업도시가 발달하고 고전 문학이 인기를 끄는 북유럽의 분위기에서 종교적인 갈등에 의해 성서 이야기가 주춤했던 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 시대 사람들은 농부, 촌사람들을 어리석게 보기도 했지만 선한 농부, 양치기, 그들의 전통과 자유로움을 선망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피테르 브뢰헬은 뻔해 보이는 상황 속에 이러한 복잡미묘함과 모호성을 담아 표현했고, 그런 방식은 아주 새롭게 느껴졌을 것이다.
인간의 오만과 몰락, 그래도 계속되는 삶. 비참함 위에 더해진 유머. 성경구절이든 신화 내용이든 강요나 일차원적 표현이 아니라 다층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조심스럽게 변주하여 해석의 다양성을 주는 그의 그림에 도전하는 것은 상상력과 통찰이 필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