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사회적 불안이 만연한 곳에서는 사람들의 그런 심리를 반영하거나 위로하는 독특한 예술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전염병, 속물들이 지배한 사회에서 이단적 종교 마저 들끓던 1500년 전후. 네덜란드의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c.1460~1516)는 <쾌락의 정원>이라는 세폭제단화 형식의 그림을 그렸다. 보스의 작품 중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가장 많은 수수께끼가 숨어 있고 가장 많이 연구되고 가장 다양하게 해석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Hieronymus Bosch,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oil on oak panels, 205.5×384.9 cm, Museo del Prado, Madrid.
구석구석에 놀라운 세부묘사가 있는 이 작품에 보스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한 얼굴을 집어 넣어 놓았다. 보스의 자화상은 어디에 있을까?
프라도미술관의 고해상도 이미지
구글 아츠앤컬쳐
---
세폭제단화(triptych)의 형식으로 패널을 닫았을 때는 천지창조의 장면이 낮은 채도로 그려져 있고 패널을 펼치면 쾌락의 정원이 등장한다.
제단화 패널을 닫은 상태. 천지창조의 3일째.
왼쪽 패널이 출발점이다. 이브가 창조된 지상낙원으로, 동시에 그 옆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괴한 생물들도 함께 태어났다. 연못 안의 오리너구리가 책을 읽는 모습, 저 멀리 기이하게 생긴 탑에서 날아가는 비행체 등 난해한 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중앙 패널에는 무질서하고 소란한 장면이 가득하다. 정원 가득 새로 탄생한 인간들과 갖은 괴기한 생물들이 쾌락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최초의 축복이었을 성적 결합이 인간들에 의해 어떻게 방탕과 탐닉과 쾌락으로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순수하게 벌거벗고 뛰어다니는 면은 분명 낙원 같은데, 성스러운 분위기가 나지는 않는다. 먼 배경에는 인어가 바다의 기사와 불륜을 맺고, 중경에는 거칠고 탐욕스런 남자들이 유혹하는 여인들을 에워싸고 유리 구체 안에 있는 연인들은 쾌락을 즐기고 있다. 다양하게 등장하는 딸기류는 세속적인 것들에 대한 탐욕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들 장면을 지배하는 것은 ‘육욕’이라는 도덕적인 주제이고, 왼쪽의 시작 화면을 천지창조가 아닌 ‘이브의 창조’로 둔 것 또한 의도적인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의 오른쪽 패널은 지옥 장면. 여기도 비슷한 캐릭터들이 재등장하는데 신의 뜻을 나몰라라하고 막 살다가 죄를 저질러 구제될 수 없는 인간들이 끔찍한 방법으로 벌을 받고 있다. 고문 도구는 류트, 하프, 허디거디(기계식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이다.
오른쪽 패널 중앙 부분에 몸통 부분이 텅빈 어떤 남자 형체가 있다. 팔이 뿌리처럼 두 척의 배에 고정된 나무 같기도 하다. 몸 안에는 악마가 들르는 지옥의 선술집이 있어 술을 마시고 있다. 머리에 악과 육욕의 상징인 백파이프가 달린 회전판을 쓰고 있다. 자기 몸을 돌아보는 듯한 이 인물은 보스의 자화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보스의 초상화와 비교하면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작자미상의 보스 초상 드로잉. 1550년대.
그 왼편에는 화살에 찔리고 긴 칼에 잘린 거대한 두 개의 귀가 있다. 옳은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인간을 벌하는 것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