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 평면에 그리는 회화 작품을 3차원인 현실인 것처럼 표현하면서 세대에 세대를 거쳐 발전해온 기법이 있습니다. 화면에서 공간감을 얻기 위해 멀고 가까운 것을 표현하는 기술인 ‘원근법’이 그것인데, 눈과 사물 사이의 거리와 시각차에 따라 물체의 크기가 달라 보이는 것을 이용한 다양한 투시도법이 대표적인 원근법이 되겠지요.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화면상에 거리 감각과 깊이 감각을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 있을 텐데, 어떤 서양화가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내가 대기원근법이라고 부르는 또다른 원근법이 있다. 같은 선상에서 보이는 물체일지라도 거리가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게 해주는 대기의 차이로 인한 것이다...그림 속에서 한 건물이 다른 것보다 멀어 보이도록 표현하려는 경우 공기에 약간 안개가 낀 것처럼 그리면 된다. 이러한 공기는 눈에 보이는 먼 대상, 예를 들면 산등성이 같은 것을 볼 때 산과 눈 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양의 공기 때문에 산이 푸른 색으로 보이게 만든다.”
Joachim Patinir, Landscape with the Flight into Egypt, oil on panel, 17 × 21 cm, 1520, Koninklijk Museum voor Schone Kunsten, Antwerp, Belg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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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근법 또는 투시도법으로만 그린다면 우리가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줄 겁니다. 우리가 접하는 세계는 공기와 수증기 입자들, 먼지 등으로 산란된 상태의 빛을 우리 눈에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먼 곳은 뿌옇게 보이니 가까이 있는 것보다는 희미한 상태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짧은 파장이 가장 많이 산란되므로 멀리 있는 어두운 물체는 대부분 푸른색을 띠고, 긴 파장은 덜 산란되어 멀리 있는 밝은 물체는 실제보다 붉게 보인다고 합니다.
위의 글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수기 중에서 회화에 대한 생각을 묶은 『회화론The Treatise of Painting』중 <대기원근법Aerial Perspective>의 시작 부분입니다. 여기서 그는 대기로 인하여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의 표현, 푸르게 보이는 원경 등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대기원근법을 이탈리아 말로 스푸마토(sfumato)라고 불렀는데, "사라지다, 퍼지다, 색조를 변화시키다"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 sfumare에서 온 것입니다. 레오나르도의 이론이 알려지기 이전에도 15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에이크(EYCK, Jan van 1395 - 1441) 등 관찰한 바를 사실적으로 그리던 많은 화가들은 먼 곳의 산을 푸르스름하게 그려 경험적으로 대기원근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 <그리스도의 책형> 부분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있다고 해도 재료가 발전하지 않았다면 대기원근법은 효과적이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반 아이크는 유화 기법을 발명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이것이 이탈리아에도 전해져 레오나르도도 유화를 사용했습니다. 보티첼리 시대의 템페라로는 중간 톤을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유화 기법은 다채로운 색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고 이러한 유연성은 화가들로 하여금 재빠르게 즉흥적 양식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점 또한 가져왔습니다. 템페라로는 표현하기 힘든 자유로움으로 철저히 계획해서 색을 섞어 오묘한 색상 변화를 화면에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고, 심지어 작품을 며칠 동안 두었다가 다시 그릴 수도 있어 시간상의 자유 또한 생겼습니다. 실수를 범해도 되는 자유. 마음속 이미지를 재빠르게 캔버스 위에 정착시킬 수 있는 여건으로 인한 창작의 확장 등등으로 여러 회화적 실험이 가능하게 된 것이 서양 회화의 급속한 발전을 유도하게 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회화론The Treatise of Painting』 영문본은 저작권 만료된 책을 무료 공개하는 구텐베르크 사이트나 아마존 등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