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19세기에 규장각 자비대령화원으로 활동한 화원 화가로, 책가도의 스타로 손꼽히며 남아 있는 작품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주가를 높이고 있다.
화원 가문에서 태어나 전통적인 기법도 계승하고 그림 속에 정교한 서양화법을 도입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당시 상류층의 문방에 대한 애호 취미를 세련된 양식으로 표현해 낸 이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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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록 책가도 종이에 채색 8폭 병풍 140.2×468.0cm 삼성미술관 리움
정답은 이형록(1808~?).
책장 그림인 ‘책가도’는 책과 경물들을 그린 ‘책거리’의 일종이다. 책가도의 책장 내부에는 책 뿐만 아니라 갖가지 귀한 장식품들 즉, 도자기나 공예품들을 넣어서 그리는 것이 보통인데, 이의 연원에는 중국 청대의 미니어쳐 장식장인 '다보격'이 있고, 좀더 올라가면 명대말(明代末)의 고상한 취미활동이 자리잡고 있다. 서재나 정원에서 차를 마시며 시문, 서화와 진귀한 붓과 벼루, 오래된 도자기, 분재 등을 감상하던 유행이 있었는데, 청대에 이르면서는 <기명절지도>라는 그림의 유행을 가져오고, 이것이 다시 조선에 전해져 진귀하고 고상한 물건과 상류층 문화에 대한 동경심이 집약된 책가도가 유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국 청대에도 책거리 그림을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욕망이 이쪽에서 더 컸던 탓인지 오히려 책과 골동, 진귀한 물건을 그린 책거리는 오히려 조선에서 더 많이 그려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했다.
조선 후기에는 이종현이라는 궁중화원이 책거리를 잘 그린 것으로 유명했는데, 아쉽게도 이종현의 책거리는 전해진 것이 없다. 김홍도나 신한평도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작품으로 볼 때 책가도의 스타는 단연 이종현의 손자 이형록이다. 그는 무슨 미신을 믿었는지 1864년에 이응록으로, 1871년에 이택균으로 두 번이나 개명을 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에게 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화원 가문 출신으로, 증조부 이성린, 할아버지 이종현, 아버지 이윤민, 숙부 이수민·이순민 모두 화원이었고 아들 세 명도 모두 화원이 되었다. 이형록이 그린 책가도의 우아함, 세련된 분위기, 그림자와 명암 등 서양화법의 구사 등은 보는 사람을 감탄케 하며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