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를 타고 있는 양반님네 주위로 남녀가 가득한데, 두 사람이 가마를 향해 엎드려 서로 이야기하고 있고, 가마 앞쪽에서는 갓을 쓴 사람이 엎드려 무언가를 종이에 적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하는 장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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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김홍도의 행려풍속도 병풍 중 한 폭인 <취중송사>의 일부분이다.
단원 김홍도 (1745-1816이후) <취중송사醉中訟事>,《행려풍속도병行旅風俗圖屛》국립중앙박물관
취한 상태에서 재판이 일어났던 일이라는 뜻이다. <노상송사> <거리의 판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누가 취한 것일까?
저 위쪽으로 홍살문이 보인다. 붉게 칠한 홍살문은 관아 앞에 세워지기도 했으므로 이 가마는 관아를 나서서 초가 지붕이 가득한 마을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해 가는 중이다. 가마를 탄 이는 이 관아의 수령, 현감이거나 군수거나 하는 원님 나리일 것이다.
가마꾼들, 아전, 일종의 큰 양산인 화개를 들거나 음식을 이고 가거나 화로, 돗자리, 기타 준비물을 챙겨 든 남녀 시종들이 보인다. 가마 옆에서 기세등등 담뱃대를 들고 있는 여인은 관기인 듯하다. 아마 원님나리가 기생들과 함께 일차로 거나하게 술을 하신 뒤 경치 좋은 어딘가로 2차 나들이를 가는 장면인 것 같다.
화면 아래쪽으로 보이는 엎드린 두 사람이 바로 고소인과 피고소인인 것 같다. 둘이 어떤 사연인지 급하게 사또를 찾아가다가 나들이가는 행렬을 만나 급한 마음에 그만 엎드려 하소연을 시작했고, 만취 상태인 원님이 이러저러 판결을 내려주자 형리인 듯한 사람이 그것을 받아 적는 장면이다. 원님은 그럭저럭 얼굴이 정상인데, 받아적는 형리도, 앞에 서 있는 아전도 취해서인지 갓이 한껏 비뚤어져 있다.
비석 뒤에 숨어 보는 구경꾼, 이 처절한 장면을 낄낄대며 구경하는 관아의 나졸들. 행렬 뒤의 아전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선비, 급히 달아나는 돼지 두 마리까지 많은 이야기를 담은 재미있는 풍속도다.
상단에는 강세황이 남긴 제발이 있다.
“물품을 공급하는 이들이 각기 자기 물건을 들고 가마의 앞뒤에 있으니 태수의 행색은 초라하지 않다. 시골사람이 나서서 진정을 올리고 형리가 판결문을 쓰는데 술 취한 가운데 부르고 쓰는데 오판이나 없을런지.”
행려풍속이란 선비가 세속을 유람하면서 보는 풍정을 담은 컨셉으로 대개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가 그림 속의 화자로 등장한다. 1778년 김홍도의 나이 서른 넷에 강희언의 집 담졸헌(澹拙軒)에서 그린 것으다. 매폭에 강세황이 그림의 내용을 간파한 화평이 있다.
이 그림 취중송사는 평생도의 구도와 유사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