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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목적에서 그려진 그림일까요?
  • 1885      
아래의 두 그림은 조선시대에 주로 왕의 명에 의해 그려지게 되는 같은 주제의 그림입니다.


傳 송민고 <빈풍칠월도> 국립중앙박물전 


傳 정홍래 <빈풍칠월도> 국립중앙박물관

어떤 목적으로 그려진 것일까요?

① 사계절 자연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② 백성들에게 효도를 권장하기 위해
③ 백성의 농사 노고를 생각하기 위해
④ 속세를 떠난 삶을 찬양하기 위해
⑤ 백성들이 분수를 지키며 살도록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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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들은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입니다. ‘빈’은 중국의 옛날 주나라의 발상지로, ‘빈풍’이라고 하면 그 곳에서 전해내려오던 풍습, 문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시경(詩經)』중에 들어있는 빈풍 대목 중 칠월편을 그린 것이 빈풍칠월도인데, 농업관계의 시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농가월령가 비슷해서 일년 전체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데 시작이 ‘칠월’이라 칠월편으로 이야기됩니다.

七月流火(칠월류화) : 칠월엔 대화성이 기울어 흐르고
九月授衣(구월수의) : 구월엔 겹옷을 준비하네
一之日觱發(일지일필발) : 동짓달엔 찬바람 일고
二之日栗烈(이지일율열) : 섣달엔 추위 매서워진다네
無衣無褐(무의무갈) : 옷과 털옷이 없으면
何以卒歲(하이졸세) : 어찌 한해를 넘길까
三之日于耜(삼지일우사) : 정월엔 쟁기 손질하고
四之日擧趾(사지일거지) : 이월엔 밭을 간다네
同我婦子(동아부자) : 내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饁彼南畝(엽피남무) : 남향 비탈 밭으로 밥 날라오면
田畯至喜(전준지희) : 권농관이 매우 기뻐하네

七月流火(칠월류화) : 칠월이면 대화성이 기울어 흐르고
九月授衣(구월수의) : 구월엔 겹옷을 준비하네
春日載陽(춘일재양) : 봄날 햇살 따스해지고
有鳴倉庚(유명창경) : 꾀꼬리는 울기 시작하네
女執懿筐(여집의광) : 여인네들 움푹한 대광주리 가지고
遵彼微行(준피미행) : 오솔길 따라
爰求柔桑(원구유상) : 부드러운 뽕잎 따러간다네
春日遲遲(춘일지지) : 봄날은 길기도 하여
采蘩祁祁(채번기기) : 수북히 쑥 캐노라면
女心傷悲(여심상비) : 여인들 마음 울적하고 서글프니
殆及公子同歸(태급공자동귀) : 귀한집 아드님 따라 함께 시집가고 싶어서라네
(후략)

첫 구절에 나오는 대화성(또는 화성)은 Mars가 아니라 전갈자리에서 가장 밝은 붉은 별 안타레스를 의미합니다. 7월 중순, 저녁 9시 때 쯤 정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저녁 같은 시각에 하늘을 본다면 점점 서쪽으로 옮겨간 위치에서 보이게 됩니다. 유화라는 것은 안타레스가 점점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가을이 깊어감을 의미하는 것이죠. 

(음력 7월이면)더위가 물러가고 이제 곧 추워질테니 옷을 지어야 하고, 정월에는 나가서 농기구를 손질하고 2월에는 발을 들어 밭을 갈아야 하고, 젊은 사람들은 밭에서 일하고 있으므로 늙은 사람들이 아녀자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들밥을 먹여서 농사를 열심히 지으니 田畯(권농하는 관리)이 기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빈풍 중 칠월편이 백성들의 생업인 농업이나 잠업(蠶業)과 관련한 풍속을 월령 형식으로 읊어서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 형식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보습을 손질하는 모습,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들에 점심 가져가는 모습, 권농이 이를보고 기뻐하는 모습, 뽕잎 따기, 흰쑥 뜯기, 베짜고 염색하기, 추수, 사냥, 집 손질하기, 벼베기,  삼씨 줍기, 대추 따기, 곡식을 창고에 들이기, 띠베기, 새끼 꼬기, 얼음을 빙고에 저장하기, 제사지내기 등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이 예문관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에게 ‘주공의 빈풍 시와 무일(無逸) 서(書)의 뜻을 담아 우리나라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담은 그림을 월령 형식으로 제작하라’고 지시하였다는 내용에서 처음 확인됩니다. 경연에서 『시경』 「빈풍편」을 모방하여 우리나라 풍속을 바탕으로 한 조선식 빈풍칠월도를 제작하라고 집현전에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조선 초기에 이미 중국식 빈풍도가 우리나라 백성들의 생활을 담은 그림으로 변환되어 제작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초기의 빈풍도는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어떠한 모습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종도 경연에서 빈풍칠월도의 중요성을 역설했는데, 빈풍칠월도는 권농책의 일환으로 제작되어 백성들의 생업에 대한 어려움을 알게 한다는 감계적 기능 외에도 하늘을 본받고 때에 순응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조선 전기의 빈풍도는 조선 후기에 이르면 ‘농가사시도’, ‘농가십이월도’, ‘경직도’ 등의 형태로 바뀌면서 백성들이 농사짓고 베 짜는 일상생활은 계속 묘사됩니다. 규장각 차비대령화원의 녹취재 화제 중 빈풍칠월편을 전거로 한 화제가 정조와 순조대에 걸쳐서 8회, 헌종에서 고종까지 5회 출제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많이 출제된 것은 ‘엽피남무 전준지희(饁彼南畝 田畯至喜)’, 즉 ‘저 남향밭 비탈로 밥을 날라오면 권농관은 이를 보고 기뻐한다’는 화제로 5회 출제됐습니다. 

조금 더 원문에 충실한 묘사를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예의 빈풍칠월도는 그저 농촌풍경일 뿐이라서 아쉽습니다.
어쨌거나 정답은 3번.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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