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알려져 있는 김두량의 개 그림입니다.
화면에 꽉 차도록 탐스러운 털을 휘날리며 컹컹 짖고 있는 바둑이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데, 그림의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씌어 있습니다.
김두량(金斗樑, 1696~1763) <삽살개〉1743년, 종이에 수묵담채, 35×45㎝, 개인
柴門夜直 是爾之任
如何途上 晝亦若此
癸亥 六月 初吉 翌日 金斗樑圖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너의 소임인데
어찌 길에서 대낮에 이러하느냐
계해(1743년, 영조 19) 6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 그림
이 글은 누가 쓴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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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우리가 아는 누르께하고 눈을 덮을 만큼 긴 털을 가진 삽살개가 아니라 얼굴 털은 짧고 온 몸에 예쁜 바둑이 무늬를 가진 놈인데, 전해지는 그림 제목 尨으로 삽살개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정중앙 화면에 가득차게 정확히 좌측면을 그렸으나 다리와 꼬리의 동세, 섬세한 털의 묘사, 실감나는 얼굴의 표현으로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한낮에 대로상에서 짖고 있는 이 강아지를 그린 것은 화원화가 김두량이었고, 이에 화제를 남겨 놓은 사람은 당시 50세였던 영조임금이었다 합니다. 김두량은 화원 집안 출신으로 南里라는 그의 호도 영조로부터 하사받은 것이고 영조가 김두량에게 ‘종신토록 급록(給祿)을 주게 명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을 만큼 국왕의 총애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 그림을 그려 바치자 영조가 할 일이나 제대로 하라며 강아지를 야단치는 듯한 화제를 쓴 것인데, 충견처럼 충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랏일은 뒷전이고 시끄럽게 떠들어대기만 하는 신하들을 빗대어 쓴 것이라고도 합니다.
김두량의 <삽살개>가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2년 『한국회화소사』(이동주)에 다음처럼 거론되면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화재의 닭과 고양이에 대하여 개 그림을 비교적 많이 남긴 사람으로 김 남리(김두량)가 있다. 김 남리는 몇 폭의 개 그림 소품을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는 영조대왕의 친필 화제가 적혀 있는 가작도 있어서 주의를 끈다.(영국소재)”
이동주 선생이 영국에 갔다가 한 고미술잡지에서 이 그림을 보고 오려두었다가 쓰는 바람에 영국에 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50년 이상 벨기에의 한 개인에게 소장되어 있던 것으로, 90년대에 일본의 고미술상인을 통해 일본으로 넘어와 개인 소장가의 손에 들어갔다가 이후 애견인인 국내 한 중견기업 회장이 이 그림을 사들임으로써 국내로 귀환하게 됐지요. 이번 2019년 5월에 부산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그림이 있던 화첩머리에 이 글씨가 영조의 글씨임이 밝혀져 있었다고 하고, 이에 대해 국내 연구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70여 년 전 한양 도성 내에서, 음력 6월 초 요맘때 눈치 없이 짖던 강아지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작자와 제작연도가 있는 귀한 그림으로 남겨지면서, 그리고 임금의 화제에 오르면서 불멸의 운명을 가지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