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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그림은 어떤 임금의 친위부대 건물일까요?
  • 1884      
위 아래로 길쭉한 이 그림은 어떤 집을 위에서 내려다본 것처럼 그린 그림입니다.


공간이 세 개로 나뉘어져 있고, 건물의 세세한 모습 아래에 그 명칭이 적혀 있고, 작고 큰 연못에는 연꽃도 그려 넣었습니다. 연못 주위에 심어진 나무들은 수종을 알아볼 정도로 명확하게 그렸고, 우물의 위치, 측간과 그 아래를 지나는 수로까지도 그려져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 공간은 조선시대 한 임금이 새로 설치한 친위부대가 사용하던 곳입니다. 어떤 임금일까요? 
그림의 형식이 조금 힌트가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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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서이현궁(현 종묘 옆 인의동) 터에 1787년 조성한 장용영 본영을 그린 그림으로, 1799년, 즉 정조23년에 그려졌습니다. 건물과 각종 시설 구조 등을 세세히 채색으로 기록했습니다. 


본영도형(本營圖形) 1799(정조23) 195.8x111.5cm  장서각 소장


정조는 세손시절부터 여러 차례 신변에 위협을 받았습니다. 1776년 임금으로 즉위한 다음에도 자객이 궁궐에 침입하는 등의 사건을 겪고 국왕 호위를 전담하는 숙위소(宿衛所)를 설치, 심복 홍국영을 숙위대장에 임명합니다. 홍국영은 정조의 신임을 지나치게 믿고 욕심을 부리다 숙청되고(1779) 숙위소도 폐지됩니다. 정조는 자객의 침입과 반역사건을 겪으며 친위 부대를 창설할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정조가 즉위했을 때 서울에는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어영청, 총융청 다섯 개의 부대가 있었습니다. 병조판서가 직접 금위영을 지휘했지만 나머지 4부대는 병판의 지휘를 받지 않고 노론과 소론 등 정치세력을 은밀히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정조는 즉위 초에 군사제도를 개혁해 나갈 계획을 밝혔습니다.

1782년(정조5년)에 정조는 훈련도감의 무예출신 및 무예별감의 장교를 지낸 무사 30명을 뽑아 창경궁 명정전에 숙직하며 자신을 호위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무예별감 가운데 무과에 합격한 무사들이기 때문에 신분도 분명하고 무예 실력도 뛰어난 최정예 병력이었습니다.

1784년(정조7년)에 정조는 자신의 생부인 사도세자의 존호를 장헌세자로 바꾸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과거 시험을 실시해서 무과에 무려 2,000여 명을 합격시켰습니다. 1785년(정조8년) 홍복영의 역모사건이 일어나자 합격한 무사들을 흡수해서 ‘장용위(壯勇衛)’라는 군사부대를 만들고 약 500명씩 5개 부대로 편제합니다. 

1788년에는 이 장용위를 장용영(壯勇營)으로 개칭하여 정식 군대로 발전시킵니다. 1793년에 이르면 도성 중심의 내영과 그 외곽인 수원 성곽 중심의 외영으로 확대 편제하여 기존 5군영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1795년 다른 군영의 군대를 흡수해서 5사 23초의 편제를 갖추었고 대장 장용사(壯勇使)가 이를 지휘했습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지 1년만인 1800년 정조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고, 장용영은 1802년(순조 2년)에 폐지됩니다.

정답은 정조의 장용영.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2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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