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은 평양 조선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두량(1696-1763)의 <목동오수>입니다.
김두량 <목동오수> 종이에 담채, 31x51cm, 평양 조선미술박물관
한 목동이 소를 풀어 놓아 먹이고는 둔덕에 기대어 한가로이 낮잠을 청하는 모습입니다.
이 그림은 조선후기의 풍속화로 다소 과감한 구도로 보입니다. 그 이유는 한 선배 화가의 그림 중 일부를 클로즈업 해서 그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배 화가의 그림은 산과 들판이 주되게 보이는 산수화에 가깝고 그 속에 밭 가는 농부와 목동이 작게 그려진 것으로 풍속화로 보기에 애매합니다.
우측 하단에 풀 뜯는 소와 목동의 잠든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산수화 속에 개성적이고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집어넣었던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김두량 외에도 그 이후 김득신, 김홍도, 신윤복 등이 다양한 풍속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산수화 속에 목동의 모습을 넣어 그렸던 선배 화가는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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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윤두서(1668∼1715)입니다.
윤두서 <경답목우> 비단에 먹, 25x21cm, 해남 녹우당.
윤두서의 자손들도 풍속화를 잘 그렸지요.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김두량의 <목동오수>는 1934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14에 이병직 소장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고적도보의 도판을 보면 맨 왼쪽 아래에 김두량의 아들로 역시 화원을 지낸 '김덕하(金德夏)'라는 작은 세로글씨가 있었는데, 현재의 그림에서는 지워져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 김덕하라는 글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두량의 작품이 된 것은 이병직의 감식안에 의한 것으로 전합니다. 자세한 것은 김상엽 선생님의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koreanart21.com/column/collector/view?id=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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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윤두서(1668∼1715)입니다.
윤두서 <경답목우> 비단에 먹, 25x21cm, 해남 녹우당.
윤두서의 자손들도 풍속화를 잘 그렸지요.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김두량의 <목동오수>는 1934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14에 이병직 소장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고적도보의 도판을 보면 맨 왼쪽 아래에 김두량의 아들로 역시 화원을 지낸 '김덕하(金德夏)'라는 작은 세로글씨가 있었는데, 현재의 그림에서는 지워져 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이 김덕하라는 글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두량의 작품이 된 것은 이병직의 감식안에 의한 것으로 전합니다. 자세한 것은 김상엽 선생님의 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koreanart21.com/column/collector/view?id=1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