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 한 사람이 나귀를 타고 물가 좁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선비가 무엇인가에 이끌려 한 곳을 쳐다보고, 그 뒤를 따르던 동자도 그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이 장면의 묘사는 김홍도의 <마상청앵>을 떠올리게 합니다. 같은 주제이지만 선비를 돌아보게 한 주제가 ‘꾀꼬리’가 아니라 물오리 두 마리입니다. 물오리가 갑자기 푸드덕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모습을 동세 있게 표현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선비의 표정과 동작이 조금 뻣뻣하네, 하는 아쉬움이 잠깐 생기기는 하지만 인물의 표현이나 분위기에서 김홍도나 조선후기 화가의 영향을 받은 그림임을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이 사람은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화원으로 간간히 언급되던 사람입니다. 유명한 화원 가문에서 태어나 82세가는 긴 생애를 살며 57년간 화원으로 활동했습니다. 60세 무렵까지는 도화서의 회사(繪事)에 참여하는 일이 많았고, 이후에는 화업은 줄이고 주어지는 관직을 수행하면서 종1품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주로 다른 화원 가문의 화원들, 김정희 문하의 문인들, 여항문인 등과 교유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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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임당 백은배(白殷培, 1820 ~ 1901). '백은배인'과 '임당' 인장을 찍었고 관서에 '琳塘'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임당 백은배 <기려연강騎驢沿江> 종이에 수묵담채, 26.5x25.6cm, 간송미술관
부친은 화원인 백민환, 모친은 화원인 이윤민의 딸이었습니다. 임천 백씨는 기술직 중인가문으로,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주로 역관에 종사했는데, 부친 대에서 백준환·백응환·백인환 등 화원을 배출하였고, 백은배 대에는 본인을 비롯해 백용배·백영배·백희배·백운배·백성배·백의배 등 총 10여 명의 화원을 배출하여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화원 집안이 되었습니다. 주로 역관을 배출해 오던 임천 백씨 가문에서 화원이 나오게 된 것은 백은배의 부친 대에서 다른 화원 가문과 혼인으로 맺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백은배의 어머니 뿐 아니라 백영배는 이형록의 딸과 결혼해서, 외가, 친가 두루 화원 집안이었습니다.
『매일신보』 1916년 5월 24일자에 장지연이 연재한 송재만필松齋漫筆의 일사유사逸士遺事 중 그에 관한 내용을 보면, “백은배의 산수화와 인물화에는 암담黯淡한 옛 기운이 있어 그림을 청하는 이가 매일 와서 병풍을 만들어 달라 청하니 이에 응해 그림 그려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하며, 또 “유숙劉淑과는 서화로 이름을 나란히 하면서 매번 만날 때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말술을 끝도 없이 마셔 풍류를 질탕하게 즐겼다”고 전합니다. 《임당취화석처촌인혜산필 화조인물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백은배의 작품과 함께 유숙의 인물화가 들어 있어 그들의 교유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일신보』 1916년 5월 24일자에 장지연이 연재한 송재만필松齋漫筆의 일사유사逸士遺事 중 그에 관한 내용을 보면, “백은배의 산수화와 인물화에는 암담黯淡한 옛 기운이 있어 그림을 청하는 이가 매일 와서 병풍을 만들어 달라 청하니 이에 응해 그림 그려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하며, 또 “유숙劉淑과는 서화로 이름을 나란히 하면서 매번 만날 때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며 말술을 끝도 없이 마셔 풍류를 질탕하게 즐겼다”고 전합니다. 《임당취화석처촌인혜산필 화조인물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에는 백은배의 작품과 함께 유숙의 인물화가 들어 있어 그들의 교유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회화 작품으로는 인물화, 산수화, 화조화 등이 남아 있는데, 모든 화목에 걸쳐 소재나 색감, 작품 형식 등의 화풍이 전반기와 후반기에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57년간 화원으로 활동하면서 선배 화원인 김홍도, 김득신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을 것이고, 신윤복의 풍속화나 정선의 산수화, 심사정의 화조화도 그의 그림에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후반으로 갈수록 소재가 한정되는 것은 아마도 수요자의 기호에 맞춘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일 텐데, 대개 여항문인 계층이었을 그의 고객들의 취향의 반영이었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