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조선 후기의 시서화에 뛰어났던 문인 화가로, 종조부가 있는 안산을 다니며 강세황, 이용휴, 유경종 등과 친하게 지냈는데, 특히 강세황과는 평생 절친한 친구로 남았습니다.
성균관에 머물 때 ‘성균관 유생들의 부채는 oo의 그림이 아니면 손에 잡지 않았다’ 할 정도로 그림 솜씨가 뛰어났습니다. 서화골동 취미가 있었고, 강세황이나 정선, 조영석 작품에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고수노송古樹老松> 견본담채 22.7x22.6cm 간송미술관
<국화도> 《근역화휘 천첩槿域畵彙 天帖》 지본담채 26.7x18.7cm 서울대학교박물관
<과관왕묘시過關王廟詩> 지본묵서 58.5x36cm 고려대학교박물관
가장 큰 힌트는 그의 호. 그는 담배를 유달리 좋아하여 호가 ‘골초선생’이라는 뜻으로 烟(연기 연)자가 들어갑니다.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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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연객 허필(許佖 1709-1761)입니다.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시·서·화에 전념하여 삼절(三絶)로 일컬어졌고, 청빈하면서도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로 문학과 고예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모든 서체에 두루 능통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림으로는 산수화나 영모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렸고, 화법은 오파(吳派)와 미가(米家)의 양식을 따라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문인화인 남종화풍을 따랐습니다.
모든 서체에 두루 능통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림으로는 산수화나 영모화를 많이 그렸는데 그렸고, 화법은 오파(吳派)와 미가(米家)의 양식을 따라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문인화인 남종화풍을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