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로는 쿤디카(kundika).
이 '병甁'은 원래 인도에서 승려가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물병에서 유래하여 차츰 부처님을 떠받드는 공양 도구로 쓰이게 됐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처님의 구제의 상징이나 자비심을 표현하는 상징으로도 쓰였습니다. 특히 관음보살이 가지고 있는 지물(持物)로 자주 등장합니다.
고려 시대의 청동으로 만든 이 '병'에 대해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이 남겨 놓은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〇병은 목이 길고 배가 불룩하며 옆으로 물을 따르는 주둥이가 하나 나 있다. 중간에 두 마디가 있는데 물레 흔적이다. 뚜껑과 목 중간에는 턱이 있고 턱 위에 다시 작은 목이 나있어 비녀나 붓의 형상을 띤다. 귀인, 나라의 관청, 사찰, 도관 그리고 민가에서 두루 사용하며 주로 물을 담아 썼다. 높이는 1자2치, 몸통둘레는 4치, 용량은 3되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고려도경』권31「기명(器皿)」)
고려 시대의 청동으로 만든 이 '병'에 대해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이 남겨 놓은 기록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〇병은 목이 길고 배가 불룩하며 옆으로 물을 따르는 주둥이가 하나 나 있다. 중간에 두 마디가 있는데 물레 흔적이다. 뚜껑과 목 중간에는 턱이 있고 턱 위에 다시 작은 목이 나있어 비녀나 붓의 형상을 띤다. 귀인, 나라의 관청, 사찰, 도관 그리고 민가에서 두루 사용하며 주로 물을 담아 썼다. 높이는 1자2치, 몸통둘레는 4치, 용량은 3되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고려도경』권31「기명(器皿)」)
무슨 병일까요?
답은 정병(淨甁).
왼쪽 그림은 '청자양각 포류수금문 정병(靑磁陽刻蒲柳水禽文淨甁 12세기 높이 36.7cm 호림미술관)'이고, 오른쪽은 '청동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 11~12세기)'입니다.
청자 정병은 청동기로 만든 청동 정병과 거의 비슷해 청동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서긍의 기록을 보면 정병은 물을 담아 사용했으며 사찰이나 도교의 도관 뿐아니라 왕궁, 귀족 그리고 관청, 민간 등에서 두루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