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그림의 얼굴이 거의 같습니다. 이 사람은 조선 후기의 유명 서화가이자 평론가라 할 수 있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입니다.
왼쪽은 이명기가 그린 그의 초상화, 오른쪽은 자신이 그린 자화상입니다.
이명기, 강세황 초상, 비단에 색, 94x145.5cm, 국립중앙박물관(진주강씨 백각공파 종친회), 보물 제590호
강세황, 자화상, 조선 1782년, 비단에 채색, 88.7×5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진주강씨 백각공파 종친회 기탁), 보물 제590-1호
왼쪽 강세황 초상은 그가 기로소에 입사한 것을 기념하여 정조의 전교를 받아 당시 28세였던 이명기가 제작한 작품으로 강세황의 셋째 아들 강관(姜琯)이 쓴 「계추기사(癸秋記事)」를 통해 이 초상의 제작내력과 제작과정, 소요예산 등을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림 속의 강세황은 관복에 관모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자화상은 70세의 자신의 모습을 직접 그리고 찬을 기록한 1782년의 그림입니다.
오른쪽 자화상은 70세의 자신의 모습을 직접 그리고 찬을 기록한 1782년의 그림입니다.
옷은 평상시 도포이고 머리 위에는 갓이 아닌 관모를 쓰고 있는 점이 특이합니다.
찬에 "마음은 산림에 있되 이름은 조정에 있다"는 것으로 보아 나이 60이 넘어 뒤늦게 관직에 오른 자부심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