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많은 풍속도가 그려졌습니다. 특히 자리를 짜는 모습을 그린 이 두 점의 작품은 풍속화로 이름을 날렸던 두 사람이 각각 그린 것입니다. 각각 누구의 그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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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의 것이고, 아래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입니다.
김득신(1754(영조 30)∼1822(순조 22))은 대대로 화원을 하여 유명한 개성(開城) 김씨 집안 출신의 화원으로, 김홍도의 선배로 알려진 김응환(金應煥)의 조카이며, 동생과 아들도 모두 화원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내용과 형식에서 김홍도를 가장 충실히 계승한 화가로 평가받는 그는, 김홍도 화풍이 형식화되어가면서 풍속화의 퇴영이 예고하는 출발선상에 놓여졌던 화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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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은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의 것이고, 아래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그림입니다.
김득신(1754(영조 30)∼1822(순조 22))은 대대로 화원을 하여 유명한 개성(開城) 김씨 집안 출신의 화원으로, 김홍도의 선배로 알려진 김응환(金應煥)의 조카이며, 동생과 아들도 모두 화원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풍속화의 내용과 형식에서 김홍도를 가장 충실히 계승한 화가로 평가받는 그는, 김홍도 화풍이 형식화되어가면서 풍속화의 퇴영이 예고하는 출발선상에 놓여졌던 화가이기도 합니다.
대표작으로는 간송미술관 소장의 <풍속화첩>과 1815년 62세 때 그린 호암미술과 소장의 8폭 병풍이 알려져 있습니다. 또 별도로 흩어진 화첩용 그림들이 비교적 여러 점 남아 있는 편이어서 풍속화가로서 김득신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지요. <자리짜기>에서 김득신은 같은 주제를 그려도 김홍도와 달리 집안 정경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근경에 책읽는 아이를 그리고 열린 문틈으로 얼굴을 빠끔히 내민 고양이를 배치하여 김홍도보다 현장감 나는 생활 풍속을 살려 내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