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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염자 김희겸이 그린 새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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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겸 <연호대란> 비단에 먹 33.0x20.3cm 간송미술관


물가에 세 마리의 새가 보인다. 아니 자세히 보면 네 마리. 높은 곳에서 매가 오리를 향해 물로 낙하하려는 순간이며 목표물이 된 오리는 물 속으로 머리를 박고 있다. 중간에서 백로가 후두둑 난리를 피해 날아가고 있고, 꽃이 진 연잎 뒤에 또 한 마리의 오리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림 위 글씨는 壬戌仲秋 仲益 寫. 임술년 중추, 중익이 그렸다는 관서로 음력 8월의 중추, 연꽃이 지고 가을을 맞은 연못의 풍경이다. 간송미술관에서는 이 그림에 ‘연호대란(蓮湖大亂)’ 즉 연꽃이 핀 호수에서의 큰 난리라고 이름붙였다. 

매가 백로나 오리를 사냥하는 장면은 명나라 때 화원화가 등 많은 화가들의 소재가 되었지만, 대개 그런 그림이 강한 채색이나 화려함, 세밀한 표현 등을 특징으로 하는 데 비해 이 그림은 조금은 엉성하고 밋밋하게 그려졌다. 자연스러움과 소박한 멋이 있지만 매가 더 컸더라면, 그리고 구도에 좀더 신경을 써서 시선을 집중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 또한 든다. 

그림을 그린 이는 불염자 김희겸. 仲益은 그의 자(字)이다. 겸재 화풍을 계승한 산수화를 많이 남긴 화원화가로 화조영모화는 상대적으로 남아있는 작품이 적다. 정확한 생몰년에는 의문이 있지만 1710년경 태어났다고 하니 임술년 1742년. 영조 18년 때, 그가 30 전후의 젊은이였을 때 남긴 그림이다. 김희성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으나 이 그림에는 ‘김희겸’ 이름과 호를 백문방인, 주문방인으로 찍었다.

화원으로서는 숙종어진, 영조의 비인 정성왕후 국장도감, 숙종 계비인 인원왕후 국장도감, 정조 왕세손 책봉을 위한 책례도감, 1760년 (영조의) 청계천 준설 작업을 기록한 준천계첩 등의 제작 작업에 차출되었던 기록이 있다. 아들 김후신도 화원.

화원이지만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웠다고 하며, 김희겸의 그림에 강세황이 제발을 쓴 예가 많아 그와도 교유했음을 알 수 있다. 김희겸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강세황은 그의 단명을 애도한 글도 남기기도 했다. 화보집에서 영향받은 전형적인 화풍도 있지만 정선과 강세황, 그 시대 그림의 양대산맥에게서 영향을 받은 데다 화원의 전통도 있어 그의 그림에서는 다양한 만남과 자극을 느낄 수 있다. 새로운 준법이나 서양화법의 시도도 볼 수 있고  「석천한유(石泉閒遊)」 같은 혁신적인 양식의 초상화를 남기기도 했다. 화평을 남기기도 했는데 양은 적지만 소신이 분명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심사정의 <송하음다>의 지두화법에 대해서는 ‘화가의 기이한 재능을 과시하는 행위’라며 부정적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매는 깃털의 질감과 동세가 드러나게 섬세하게 표현하고, 연밥이 드러난 가을의 연꽃과 연잎은 몰골법으로 담묵을 여유있게 구사해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김희겸이 좀더 오래 살아서 더 새로운 시도를 하고 더 발전된 그림들을 남겼을까. 이 영모화에서처럼 주제나 구도를 넘어서 선비화가가 그린 듯한 분위기까지 전달할 수 있었던 능란함이 묻혀진 듯해서 아쉽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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