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녀, 공자성적도 중 <문례노담>, 견에 담채. 31.5x72.8cm, 국립중앙박물관 (덕수 1397)
밖에 우마차가 주차되어 있고, 방문객 일행이 누군가 귀하신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시종들은 분주히 손님 대접을 서두르는 장면이다. 방문객 대표는 공자, 방문을 받고 그림이 뒤로 펼쳐진 대 위로 앉으신 분은 노자이다. 평양 출신 화가 김진녀(金振汝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가 1700년에 그린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중 한 장면이다.
중국 원나라 때 이후 공자의 생애를 장면을 모은 전기화집(傳記畵集) 공자성적도(또는 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는 반복적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에서 만들어진 공자성적도가 많지는 않아도 1539년 최초로 유입되어서 중국의 것을 모본으로 판각하거나 그림을 그린 작품들이 여럿 전해진다. 현존작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이 김진녀의 <공자성적도> 10점의 그림들이다.
이 장면의 제목은 ‘문례노담(問禮老聃, 노담에게 예를 묻다)’이다. 공자가 제자인 남궁경숙(南宮敬叔)과 함께 주나라에 건너가서 당시 주 왕실의 도서관 사서로 있던 노담(老聃), 즉 노자와 만나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푼 것이다.
남궁경숙이 노나라 군주를 찾아가서 “공자와 함께 주(周)나라에 가고자 한다”고 했더니 군주가 수레 한 대, 말 두 마리 그리고 시종 한 명을 주고 주나라에 가서 예를 물어보라고 했다 한다. 공자는 주나라를 이상적인 국가로 여겼고 주나라 왕실 도서관을 맡은 노자가 주나라의 예절과 법도를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일화는 ‘사기열전’ 등에 언급되어 있고 여러 판본의 ‘공자성적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요한 사건이지만 노자와 공자가 실제로 대면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존경해 마지않던 두 인물의 만남이라니, 당시 사람들의 바람이 그림으로 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작자 미상, ‘문례노담’ 1742년, 종이에 담채, 33×54㎝, 성균관대학교박물관
김진녀는 문헌가의 자제로 조세걸에게서 산수, 인물, 화조를 배웠다고 한다. 1712년 김창집이 동지사로 중국에 갈 때 평양에서 김진녀에게서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왔던 명나라 장군 이여백의 초상화를 받아 중국에 그의 후손에게 가져다 주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외의 기록도 대개는 초상화가로서 유명했던 그의 명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들이다. 어용 도사 때 천거되기도 했었는데 급하게 올라오느라 무리했는지 시재에서 떨어져 다시 돌아갔다고도 한다. 그가 참여했던 기사계첩(1719년 숙종의 기로소 입소 기념) 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