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석(?-?) <고촌모애도孤村暮靄圖> (1849년 경) 《팔인수묵산수도》 중, 72.5x34.0 비단에 수묵 삼성미술관 리움
추사 김정희가 9년의 제주 유배생활을 마치고 올라온 바로 다음 해, 1849년 중인 서화가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자신의 그림과 글씨를 올리고 추사는 이에 대해 한 마디씩 평을 해주었다. 『예림갑을록』으로 그 양상이 전해진 이 유명한 모임에서 평가받았던 화가 여덟 명은 각 석 점씩 평가를 받았는데, 화가마다 한 폭의 그림씩 묶어서 전해지고 있다. 이한철 竹溪僊隱圖 / 김수철 梅雨行人圖 / 허련 秋江晩矚圖 / 전기 秋山深處圖 / 박인석 孤村暮靄圖 / 유숙 疏林晴嶂圖 / 조중묵 秋林獨釣圖 / 유재소 秋水溪亭圖 가 그것이며, 각 그림 안에는 이들 모임의 큰형님 격인 조희룡이 자신만의 평가를 써 넣었고, 위쪽 덧붙인 종이에 오세창의 그림에 대한 감상과 기록도 적혀 있다.
이한철 허련 전기 유숙
유재소 김수철 박인석 조중묵
다른 화가들에 비해 유독 삶과 작품이 덜 알려진 박인석(朴寅碩)의 <고촌모애도>를 찾아 본다. 박인석은 이한철, 조중묵 등과 함께 화원으로 일했던 사람으로, 현전하는 작품이 극히 드물다. 헌종의 어진 제작, 순조 순원왕후 존호도감 제작을 맡은 기록이 있다.
추사는 그의 그림에 대해 “명나라 태창(太倉) 일파의 화법을 엿볼 수 있다”고 평했다. 태창(太倉)은 장쑤성(江蘇省)의 한 지명으로 명말청초에 활약한 사왕오운 중 왕시민王時敏, 왕원기王原祁, 왕감王鑑등이 태창太倉 출신이다. 원나라 사대 문인화가 영향을 받은 이들은 청초의 남종화풍에 영향을 주었다. 이 사람들의 그림 분위기를 박인석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었다는 의미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태창 출신 오위업(吳偉業, 1609-1671)의 <우경산수도>
한편 박인석의 고촌모애도에 대한 조희룡의 제시는 다음과 같다.
曾作丹邱遊 예전에 단구에서 노닐었지
林壑入夢中 그 숲 그 계곡 꿈속에 들어온다
眞緣猶未了 참다운 인연 아직 다하지 않아
圖畵又春風 그림이 또 봄바람이로세
霞石 하석
하석이라고 관지처럼 썼으나 우봉이 쓴 글이다.
오세창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박인석은 자가 경협, 호는 하석이다. 완당 김정희가 그의 <곡오청람도>를 평하기를 “이것은 명대 청문산인 심사의 필의가 있다. 홍염(烘染)이 제법 좋다.”고 하셨다. 한도인 오세창 쓰다.
한 때는 화원 화가로서 조선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그룹에서 친구들과 어울렸으나 그의 그림이 남아있지 않아 그 화풍이나 업적을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 한 옥션에 그의 그림이 등장한 적이 있다.
2018년 9월 케이옥션 메이저경매 LOT 409
하석 박인석 <소점대계교少店帶溪橋 > 종이에 수묵담채 24×13.5cm,
KRW 5,000,000 – 10,00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