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영 <백사동인야유회도> 1784, 종이에 수묵담채, 31.3x41.7cm 개인
꽃놀이 야유회 시즌이 막을 내리고 있다. 산들산들한 바람을 즐기는 것도 며칠, 이제 뜨거운 여름 날씨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노랗고 붉은 꽃들이 피어난 가운데 선비들이 모여 있다. 누군가는 흐르는 물을 보고 있고, 붓과 종이, 술상을 보면 여유로운 시회 모임이다. 이들은 18세기 조선 선비들로 모두 남인계이며 그린 사람도 남인 계열의 선비 화가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이다. 모임의 이름은 ‘백사(白社)’. 집안 간 서로 알거나 학맥으로 얽힌 사람들이다. 정계, 홍주만, 송제로, 강세동, 정집, 엄구, 이정대, 오명구, 홍기한, 정목, 이의형, 이혜조, 이명준, 신택권, 이휴, 송제우, 박헌채, 홍응진 등.
이 <백사동인야유회도>가 포함된 《백사회첩》의 서문에는 ‘도성 서편 삼문(三門) 밖에 거주하는 사대부들이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로이 노년을 지내는 가운데 하나둘씩 친교를 나누다가 자연스럽게 백사를 이루어 시회를 갖고 서첩을 꾸미게 되었다’고 그 배경을 적어놓았다.
시를 읊기 위한 풍류에는 역시 좋은 경치와 좋은 사람들이 필수조건인 만큼, 시회 모임을 기록한 그림의 배경 산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요 요소가 된다. 전반적으로 깔끔한 붓터치로 사람들과 나무나 시냇물, 바위 등의 자연물이 서로 나서거니 하지 않고 시원하게 공간을 주도록 배치했다. 선비들은 둥글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나 서 있는 사람 다가오는 사람이 조금씩 다른 자세를 하고 있다. 우측의 세 그루 소나무에서 가지가 내려와 모임 공간을 아늑하게 만들고, 지면과 함께 사선으로 시선을 흘러내리도록 만든다. 정수영 특유의 깔끔한 담채이면서 물기가 적은 갈필의 그림이다. 좌측 상단에는 주문방인 ‘정수영인(鄭遂榮印)’ 백문방인 ‘정군방인(鄭君芳印)’이, 오른쪽 끝에는 유인 ‘천석고황(泉石膏肓, 산수를 사랑함이 너무 지나쳐 마치 불치의 병과 같다는 의미)’이 찍혀 있다.
회첩 기록에 의하면 이 시회가 열린 것은 1784년 12월 돈의문 밖 냉정, 지금의 서대문구 냉천동 연암(烟巖) 주변이라고 한다. 딱히 큰 바위가 눈에 띄지는 않으나 그림 뒤쪽 언덕처럼 표현된 곳일지도 모르겠다. 음력 12월이니 저런 풍경이 나오기는 조금 이른데,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겠다. 제작연도가 적힌 정수영의 기년작 중 가장 이른 것이다(만 41세 때의 작품).
한강과 임진강의 풍경을 마치 배타고 가면서 감상하듯 보여주는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이 정수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길게 이어지는 풍경에 그의 담백하고 깔끔한 필치를 마음껏 펼쳐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 전체 작품 디테일 감상 : 박물관 소장품 페이지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search/view?relicId=5954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 부분. 종이에 수묵담채, 24.8x157.5cm, 국립중앙박물관(덕수 3991)
그는 유명한 학자 정인지(1396-1478)의 후손이고, 실학자 정상기(1678-1752)의 증손자이기도 하다. 평생 관직에는 나아가지 않고 지도를 제작하거나 여행을 다니거나 서화를 즐기며 일생을 보냈다. 남긴 그림들은 기행사경, 산수도 외에도 화조, 어해 등 다양한 편이고 화보를 통해서 익힌 남종화법, 이인상이나 강세황의 화풍도 담아 거친 갈필, 독특한 윤곽선, 선염, 맑고 화사한 담채 등을 보여주어 전문 직업화가가 아닌 선비 화가 중에서 독보적인 한 화격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