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실, <관세음보살삼십이응신도> 1550년, 비단에 채색, 201.1×151.2cm, 일본 교토 지온인 소장. (사진: 강소연)
<도갑사(道岬寺) 관세음보살삼십이응신도(觀世音菩薩三十二應身圖)>는 1550년에 그려진 조선 전기의 불화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그림이 이렇게 훌륭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것은 드문데, 영암 월출산 도갑사에 있는 것은 아니고 일본 국보를 비롯해 각종 문화재를 다수 가지고 있는 일본 교토의 정토종 사찰 지온인(知恩院)에 있다. 관음보살의 서른 두 가지 응신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조선 제12대 왕인 인종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부인인 대비가 발원해 이자실이라는 그 시대 대표 화사가 그린 그림이다. 작품의 크기가 2미터에 이르는 대작이니 실제로 보게 된다면 그 장엄함에 자연스럽게 압도될 것이다.
화엄경 등에는 관음보살이 중생들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을 구제하기 위해 33가지 모습으로 변신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주석서를 바탕으로 32가지만 표현한 것이고 실제로 그림에서는 22가지만 등장한다. 중앙 바위산 꼭대기에 앉아있는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고통받는 중생과 이를 구제하는 응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그림의 중생들은 도적을 마주치거나, 호랑이, 뱀, 전갈을 만나 목숨이 위태로워지거나, 폭풍우 치는 바다에 고립되거나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히거나 망나니 앞에 꿇어앉는 등의 고난을 마주했다. 이에 자비로운 관음보살이 때로는 비구니, 때로는 왕이나 관리, 또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들을 구제해 준다.
장식적이면서 섬세 우아함을 추구했던 고려 불화와는 모양새가 많이 달라서 속도감마저 느껴지는 회화적인 필선이 있고, 산수화에서 사용하는 삼원법을 써 공간감을 나타내는 데에 신경을 썼다. 산과 계곡은 모두 청록 안료를 마음껏 사용하였는데, 각 부분을 잘라내 본다면 폭마다 청록산수화, 산수인물화로 감상할 만하다. 청록산수는 궁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통 회화기법이므로 궁중에서 제작되었을 확률이 높다는 것에서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작품의 화기에는 “가정(嘉靖) 29년 경술 4월 초하루 우리 공의왕대비전하는 인종영정대왕의 영혼이 정토에 다시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며, 양공을 모색해 그로 하여금 채색화 관세음보살삼십이응탱 한 폭을 그리게 하여 월출산 도갑사 금당에 봉안케 했다. 이에 삼가 향을 올리고 예를 갖춘다”라고 되어 있다. 작품 좌측 하단에는 “臣李子實沐手焚香敬畵”라고 금색의 글씨로 명기되었다.
조선 전기의 청록산수화가 남아 있는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불화이기는 하지만 조선 전기 청록산수 회화적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유재란 때 일본에 건너갔고 메이지유신 때 시장에 나온 것을 지온인이 구입해 소장하게 됐다.
지난 주 뉴욕 크리스티에서 8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며 국내로 환수되었다 해서 화제가 된 그림이 있었다. 이 <독서당계회도>(1531)는 지난 달 서울에서 프리뷰로 선을 보였는데, 16세기 전기에 그려졌던 계회도에 원경의 산이 청록의 안료로 칠해져 있는 것을 확인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기해했다. 비슷한 시기 그려진 청록산수가 포함된 불화 한 점을 통해 당시 화사들이 청록 안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관심있게 들여다볼 수 있겠다. <독서당계회도>는 교토국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사학자 간다 기이치로(神田喜一郎, 1897~1984)가 소장했던 이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주 뉴욕 크리스티에서 8억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되며 국내로 환수되었다 해서 화제가 된 그림이 있었다. 이 <독서당계회도>(1531)는 지난 달 서울에서 프리뷰로 선을 보였는데, 16세기 전기에 그려졌던 계회도에 원경의 산이 청록의 안료로 칠해져 있는 것을 확인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기해했다. 비슷한 시기 그려진 청록산수가 포함된 불화 한 점을 통해 당시 화사들이 청록 안료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관심있게 들여다볼 수 있겠다. <독서당계회도>는 교토국립박물관 관장을 역임한 사학자 간다 기이치로(神田喜一郎, 1897~1984)가 소장했던 이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독서당계회도 부분
독서당에서의 열 두 명 선비 모임 기록화이다. 당시 젊고 글 좀 하는 선비를 뽑아 사가독서(賜暇讀書), 즉 일을 시키지 않고 일정 장소에서 공부하게 했는데 중종 10년(1515년) 이후는 성동구 옥수동 강가 도모포 남쪽 산기슭에 독서당을 지어 그곳에서 사가독서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독서당의 실경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근경이 두모포. 강 건너 안개에 싸여 지붕만 보이는 건물이 독서당. 계회는 강 한복판 큰 배 안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티즈 뉴욕 3월 22일 LIVE AUCTION 20621
JAPANESE AND KOREAN ART INCLUDING THE COLLECTION OF DAVID AND NAYDA UTTERBERG
Lot.279 작자미상 <독서당계회도> 1531년, 비단에 수묵담채, 91.1x61.9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