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창한(池昌翰 ,1851-1921) <게>10폭 병풍 중 두 폭, 종이에 먹, 각 133.0x33.0cm, 개인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근대회화백년(1850-1950) 전 (1987년)
지방 화단에서 꽤 많은 활동을 해서 지창한의 그림은 지금도 적지 않게 전해지고 종종 미술시장에도 등장하고 있지만 정작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살았다고 하는 정도이며, 기록에 남아 있는 것으로는 대한제국에서 1900년 경부警部 서무국장(정3품)을 지냈다고 하며, 1916년 순종에게 금강산 기행문을 지어 바쳐 100원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게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 지창한의 게 그림 병풍 중 두 폭으로 그가 즐겨 그렸던 동그란 껍데기를 가진 밤게를 갈대와 함께 그린 것이다.
갈대와 게 그림 노해도(蘆蟹圖)는 18세기부터 출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서 많이 그려졌다. (노해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갑다운 갑 - 해탐노화도" 글 참조)
그런데 지창한의 게와 갈대는 전형적인 노해도의 형태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껍데기가 동그란 밤게
갈대와 게 그림 노해도(蘆蟹圖)는 18세기부터 출세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서 많이 그려졌다. (노해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갑다운 갑 - 해탐노화도" 글 참조)
그런데 지창한의 게와 갈대는 전형적인 노해도의 형태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운동감 있는 방게의 모습, 과감하고 거친 필치가 특징적인데 도록 해설에서는 이 그림의 거친 필치는 당시 지방 화단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써 있으나 그림의 개성은 오히려 살아나게 해 주었다.
명나라 고계高啟의 시(出籪來深浦 隨燈聚遠洲) 등 알려진 글귀를 직접 화제로 썼는데 글씨에 골기가 있으면서 유연하기도 해서 독특하다. 지창한은 중국 청나라 서예가인 하소기(何紹基 1799∼1873)의 행서를 잘 썼다고 한다. 지창한의 행서와 함께 예서도 꽤 전해지는데 예서는 고예의 형태와 팔분예서를 혼용하여 행서의 기미를 가미한 경쾌한 기운이 있다고 평가된다.
명대 하소기(何紹基)의 행서
지창한은 유달리 게 그리기를 좋아했다. 한 게 그림의 제題에다가 “게는 소충의 하나로 겉이 딱딱하고 발톱이 예리한데, 오양육주 어느 곳에나 횡행하되 독한 악어도 감히 채어가지 못하고 큰 고래도 삼키지 못한다. 대단하다, 자유의 권능이여! 가히 사람으로서 너만도 못하구나[蟹一小蟲 能被堅執銳 五洋六州 到處橫行 毒.莫敢射 巨鯨不能呑 偉哉 自由之權能 可以人而不如之]”라고 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