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북 <계류도> 종이에 수묵담채 28.7x33.3cm 고려대학교박물관
사각사각 종이에 필기하는 소리, 흙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 나무도마 위 두부를 써는 소리.. 아주 조용한 상태보다는 어느 정도의 소음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집중력을 향상시킨다고들 한다. 계곡의 물 내려가는 소리는 어떠한가? 산 속에서 잠을 청해본 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빗소리인가, 하면서 귀기울이게 되는 계곡 물소리는 숙면을 보장한다.
예술가적 행동이 기록으로 남아 유명한 조선 후기의 화가 최북(1720 ~ ?)이 남긴 수묵화 한 점에서 ASMR이 들려온다. 보통 산수의 정취를 화폭에 담을 때 쓰이는 형식과 조금 다르게 물길의 폭이 넓고 중간의 바윗돌도 진한 먹으로 크게 그렸으며 앞 둔덕은 밋밋하고 원경은 생략함으로써, 계곡을 돌아 힘차게 흐르는 물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화가가 산을 돌아가는 계곡 물소리를 화폭에 담으려 한 것일까? 이는 좌하단에 적힌 화제로 확인할 수 있다.
却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聾:山 籠
신라시대 최치원이 남긴 시 중 일부의 내용으로 시의 전체 원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다.
(최북은 첫번째 글자를 却으로 썼으나 원문은 常으로 되어 있다. 또, 끝에서 두 번째 글자 대바구니 농籠(‘둘러싸다’의 의미) 자를 귀머거리 농聾으로 잘못 써서 옆에 쌍점을 찍고 제대로 된 글자를 옆에 추가해 넣었다.)
7언절구의 3번째, 4번째 구 내용을 적은 것으로 계곡 물소리를 듣다보니 세상의 소리가 안 들리는 듯했다, 또는 일부러 계곡 물소리 그득한 곳을 찾아가 세상 시비와 멀어지고자 했다는 이야기이겠다. 동문선에 전해내려 오고 있던 글이라 최북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겹겹의 바위 사이를 미친 듯 달려 골짜기에 울리니
지척의 사람 말소리는 분간하기 어렵구나
늘 옳다 그르다 하는 소리가 하는 소리가 귀에 들릴까하여
일부러 흐르는 물이 온 산을 둘러싸게 한 것이리라
(최북은 첫번째 글자를 却으로 썼으나 원문은 常으로 되어 있다. 또, 끝에서 두 번째 글자 대바구니 농籠(‘둘러싸다’의 의미) 자를 귀머거리 농聾으로 잘못 써서 옆에 쌍점을 찍고 제대로 된 글자를 옆에 추가해 넣었다.)
7언절구의 3번째, 4번째 구 내용을 적은 것으로 계곡 물소리를 듣다보니 세상의 소리가 안 들리는 듯했다, 또는 일부러 계곡 물소리 그득한 곳을 찾아가 세상 시비와 멀어지고자 했다는 이야기이겠다. 동문선에 전해내려 오고 있던 글이라 최북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내용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선진국 당나라에서 과거시험을 보고 관직을 얻기까지 한 시대를 앞서간 인물 최치원이지만 살면서는 여러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년에 가야산에 은둔해 신선처럼 살아갔다고 한다. 이 시의 제목은 <재가야산독서당>. 가야산 국립공원에는 해인사 입구까지 이어지는 계곡이 있는데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 물이 붉게 보인다 해서 홍류동 계곡이라 부른다.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가 최치원의 귀를 먹게 하였고 그는 갓과 신발을 남기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이 남아 있기도 하다. 지금도 농산정, 최치원 친필 싯구를 새긴 새긴 바위 등에서 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홍류동 계곡은 지금쯤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을까? 세상 시끄러운 소리도 잠시 끊고 물소리를 ASMR 삼아 책 읽다 단풍 감상하다 하고 싶은데, 누군가 1시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려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