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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여름 더위를 식히는 김수철의 능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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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길을 걷다 한쪽 담장을 덮은 진녹색 덩굴에 흐드러지게 핀 주황색 꽃은 잠시 열기를 잊게 한다. 실제로 식물들은 주변의 온도를 살짝 낮춰준다.
덩굴이 쑥쑥 잘 자라서인지 '하늘을 능가하는 꽃[凌霄花]'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지게 된 능소화는 여름을 대표하는 꽃으로 손색이 없는 화려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이 꽃을 만지고 눈을 비비면 눈이 보이지 않게 된다고들 해서 떨어진 꽃조차 만지지 않고 멀리서만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알고나니 아름다운 꽃이 손을 타기 원치 않은 담장 주인이 퍼뜨린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9세기의 미스터리한 화가 김수철(?-1862 이후)이 그린 능소화 그림들이 있다. 그 중 맑은 색채가 잘 표현된 것을 골라본다.


김수철 <능소화> 200x55cm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신수 715)


암석이 그림 한쪽에 치우쳐 있고 줄기가 자라나 화면 한가운데를 능소화가 차지하고 위로 가지가 하나 더 뻗어나 있다. 크게 벌어진 꽃과 어린 봉오리들이 여름 내내 피고 지는 능소화를 표현한다. 과감하고 빠른 붓놀림에, 묽은 먹과 색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간결하고 담백한 지향성을 그대로 반영해서 과감하게 생략한 나머지 한여름 흐드러진 꽃들과 짙은 녹음의 대조는 포기. 능소화 덩굴 분위기라기보다는 절벽에 피어난 한 떨기? 국화 같아 보이기도 한다. 꽃의 형태도 나팔 모양의 원래 능소화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어쨌든 그의 해석으로 그려진 능소화의 고고한 모습이 예쁘다. 

맑고 가볍고 시원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그림은 현대에도 인기 있지만 당시에도 새로운 분위기의 회화로 꽤 주목받고 있었던 것 같다. 형태를 일그러뜨리거나 옅은 색채를 세련되게 사용해서, 기존의 화훼도에서 느껴지는 잘 꾸며진 딱딱한 장식성을 벗어났기에 당시의 사람들의 눈에도 신선하게 보여졌을 것이다. 


능소화 부분


김정희 문하에서 함께 한, 동료 화가 전기田琦의 편지글에서 김수철의 작품 제작 성향을 엿볼 수 있다. 
“부탁하신 김수철의 절지도는 마땅히 힘써서 빨리 완성되게 할 텐데, 그의 화필이 워낙 민첩하여 아마 늦어질 염려는 없을 것입니다... 김수철의 병풍 그림은 이제야 찾아 왔습니다. 내가 거친 붓으로 제(題)하였는데, 당신의 높은 안목에 부응하지 못할까 심히 염려되고 송구스럽습니다”

전통적인 주제나 방식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해,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조금 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김수철은 홍세섭(1832-1884)과 함께 ‘조선 말기를 대표하는 감각적 화풍의 화가’, ‘신감각주의’, ‘이색화풍’ 등으로 평가되고 분류된다. 예술가로서의 자아, 개성, 주관을 드러내고 있는 화훼나 산수화 들을 보면, 그에 대해 전해지는 기록이 이토록 적은 것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김수철 <수국> 종이에 수묵담채 46.9x33.5cm 일본민예관 소장



김수철 <계산적적도> 종이에 수묵담채, 119x46cm, 국립중앙박물관


『근역서화징』에는 김수철의 자. 호, 본관, 그리고 일찍 죽었다는 정도만 기록되어 있다. 추사 김정희는 김수철의 그림에 대해 “구도가 대단히 익숙하고 붓놀림에 막힘이 없다. 다만 채색이 세밀하지 못하고 인물 표현에서 속기를 면치 못했다”고 평가했다(예림갑을록). 조희룡은 그의 산수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참 산처럼 산을 그려내니 참 산이 그린 산과 같네. 남들은 참 산을 사랑하지만 나 홀로 그린 산에 들어가네”. 현대에 와서 동주 선생은 “(홍세섭, 김수철의 그림으로) ‘어떤 시대의 변화’를 느낀다”고 했으며, 안휘준 교수는 “대담한 생략과 청신한 설채로 특징지어지는 색다른 경지를 보여준 화가”로 평가하고 있다. 

전통을 파격적으로 재해석했던 양주화파 등 청나라의 개성파 그림들이 유입되면서 그에 영향받았다는 해석이 많다. 그는 양주팔괴의 그림을 대하고 충격을 받았을까? 그의 맑은 색채는 전형적인 형식에 대한 고민의 결과일까? 김정희의 지도로 변화되었을까? 그의 그림을 따라 그린 사람들은 많았을까? 독자적인 양식이 구축되려다 만 것 같아서 못내 안타깝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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