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회화
  • 도자
  • 서예
  • 오늘의 그림 감상
  • art quiz exercise
타이틀
  • 세 친구가 함께 만들어낸 서지의 흰 연꽃 정취 - 이인상 <서지백련>
  • 895      

이인상, <서지백련西池白蓮> 1745, 종이에 수묵담채, 51.5x26.0cm, 간송미술관



흰 연꽃의 순백미와 우아함을 살리려고 했으려나, 먹을 다소 아꼈다 싶은 그림이 있다. 화면에 모습을 드러낸 두 송이의 흰 연꽃과 큼지막한 연잎을 좀더 또렷하게 보고 싶지만 엷은 막으로 가려진 것처럼 뿌연 것이 또 나름의 매력인 것도 같다. 

연꽃은 진흙 뻘에 뿌리를 묻고 자란다. 뻘이 있는 물이 혼탁하고 시꺼멓게 보일수록,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밝고 깨끗한 연꽃은 그 강렬한 대비 속에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니 진흙탕과 같은 밑바닥이 없으면 연꽃도 없다는 것, 그리고 아름답고 깨끗한 것은 더러운 것과 함께 있을 때 그 모습이 더욱 돋보인다는 것이 연꽃을 통해 얻게 되는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람이 살고 있는 이 흙탕물 같은 세상을 불교에서는 오탁악세五濁惡世라고 이르기도 한다. 견見, 번뇌煩惱, 중생衆生, 명命 다섯 가지가 오염되어 타락한 나쁜 세계라는 뜻이다. 

겁탁 - 시대가 탁함. 재난, 기근, 질병 등이 많아짐
견탁 - 바르지 못한 사상 견해 주의 주장이 넘쳐나고 이런 자들이 세력을 얻고 착한 사람들은 밀려남
번뇌탁 - 남의 물건, 권세, 명예에 욕심을 내며, 화가 많아지는 등 정신적인 악덕이 널리 퍼짐
중생탁 - 중생의 신체와 정신의 자질이 저하되어 과보를 두려워하지 않음
명탁 - 인간의 수명이 점차 짧아짐

다른 건 몰라도 겁탁과 견탁과 번뇌탁만큼은 확실하다. 이런 오탁악세의 흙탕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는 인간으로서는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흰 연꽃에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조심해도 흰 셔츠에 짜장면 소스 튀지 않기 어려운 중생의 입장에서는, 더러움 속에서 티끌하나 묻히지 않고 고고한 모습을 유지하는 연꽃이 더 오묘해 보이게 된다. 

불교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조선시대에 연꽃을 사랑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중 이 그림을 그린 능호관 이인상(1710-1760)의 친구 이윤영(1714-1759)은 흰 연꽃을 매우 사랑했다. 

이 그림 <서지백련>은 이윤영이 살았던 반송방 집(현재 중구 순화동-서소문 사거리 근방)의 연못에 친구들이 모여 그림 그리고 시를 읊었던 결과물이다. 연못을 서지西池라고 부른 것은 그의 집이 서대문 바깥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몇 명이 모여 있었는지는 모르나 화제를 통해서 이인상, 이윤영 외에 친구 송문흠(1710-1752) 세 사람이 연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송문흠은 유명한 (서인)노론 학자인 송준길의 증손자다. 

"그 흙이 검으니, 검은 물이 차는 바이다. 이윤영이 길러내니, 그 꽃은 연꽃 봉오리로다. 진흙에서 나왔으나 하얗고 물들지 않았구나. 혼탁한 세상에서 우뚝 솟아난 듯하니, 이윤영이 깊이 느낀 바 있었으리라."

"서쪽 연못에서 이윤영이 초(草)낸 바를 취하여 백련을 그리니 먹 씀이 지나치게 엷어서 꽃과 물을 구분할 수 없다. 드디어 색먹으로 우림을 행하고 송문흠의 부용연지명을 옮겨 적어 주인에게 보이며 한 번 웃노라. 을축년(1745) 가을날. 보산인 인상."

이윤영이 그린 초본 위에 이인상이 그림을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인상 자신이 그림을 그리다가 꽃과 물이 구분 안 될 정도로 너무 옅게 그렸던 것을 고쳐 그렸다는 변명에 더해, 송문흠이 이윤영의 연못을 ‘부용연지’로 이름지으며 쓴 글을 옮겨 적었음을 기록했다. 서른 두 살인 연못 주인과 놀러 온 서른 여섯 살 친구 두 사람이 연못가에 앉아 그림을 번갈아 보면서 웃는 정경이 떠오른다. 가을이라 했으니 연못에는 연꽃이 이미 져서 아쉬움을 담은 것이었으려나.

능호관 이인상이 서출이었음에도 목은 이색 후손 이윤영과 송준길의 후손 송문흠을 비롯해 노론 중심세력 가문 자제들이 그를 좋아하고 어울려 학문과 예술의 뜻을 나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송문흠, 신소, 오찬, 이윤영 네 사람과 친했고 평생 우정을 간직했다. 그러나 1751년~1759년, 능호관의 40대는 괴로웠다. 절친 네 사람과 부인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 절망에 빠졌고, 마지막으로 이윤영이 사망한 다음 해에 그도 50의 나이에 세상을 뜨게 된다. 




SmartK C. 관리자
업데이트 2024.10.23 20:41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