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정 <어약영일> 종이에 담채, 129×57.6㎝, 1767년, 간송미술관
옛 동양 그림에 표현되는 물고기 중 다수는 출세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잉어가 뛰어오르는 그림 ‘약리도躍鯉圖’라고도 하고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되는 그림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라고도 한다. 이 그림과 관계된 고사는 많이 알려져 있는 ‘등용문’.
작자미상 <약리도> 종이에 먹, 62.5x116.5, 국립민속박물관
황하 상류쪽의 한 지류에 (산시(陝西)성 산시(山西)성 사이에 있다고 한다) 물길이 좁아 물살이 매우 세고 빠른 곳이 있다. 이 폭포 같은 곳 아래로 큰 물고기들이 모여들지만 그 위쪽으로 오르려 수없이 시도하지만 대개 오르는 데 성공하지는 못한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일까. 만약 그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데 성공한 잉어는 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용문龍門이라고 이름을 지었겠다.
一名龍門 水險不通 魚鼈之屬莫能上. 江海大魚 薄集龍門下數千 不得上. 上則爲龍.
일명 용문이라 부르는 곳에 물길이 험해 물고기들이 그 위로 오를 수가 없다. 강과 바다의 큰 고기들이 용문 아래로 수없이 모여드나 오르지 못한다. 만일 오르면 용이 된다. (《후한서後漢書》〈이응전李膺傳〉중)
잉어가 용문을 거슬러 오른다는 의미로 이 이야기를 리어도용문鯉魚跳龍門이라고도 한다.
심사정의 그림은 협곡이 아닌 바다 같은 모양새인데, 배경만 생각한다면 이 그림은 세종 때 명나라에 간 한 사신이 중국 사람이 내민 물고기와 용 그림에 써 주었다는 화제시의 내용과 더 유사하다.
潛鱗燒尾잠린소미 -김반金泮
誰畵輕綃幅 風濤雲霧濛
누가 그렸는가 가벼운 비단 화폭 위에 / 바람과 물결, 구름과 안개를
錦鱗翻碧海 神物上靑空
비단잉어 푸른 바다를 솟구치더니 / 신물(神物)이 되어 푸른 하늘로 오르는구나
潛見形雖異 飛騰志則同
비록 숨겨지고 드러나는 모습은 달라도 / 날아오르는 그 뜻은 한가지이네
若爲燒斷尾 攀附在天龍
꼬리를 태워 끊어버리면 / 하늘을 나는 용을 따라 올라가리
잉어가 솟아오르면서 꼬리를 태워 끊어버려야(소단미燒斷尾) 용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꼬리를 태워 용이 되는 장면은 고려 때 이규보(李奎報)가 잉어 그림 위에 썼다는 ‘화이어행畫鯉魚行’에도 나온다.
我恐桃花浪拍天 두렵구나 복사꽃 물결이 하늘까지 닿을 때
去入龍門燒尾炎欠飛起 용문에 들어 꼬리를 태워 불꽃을 일으키며 날아오를 것이
정조 때의 문신 이헌경(李獻慶)이라는 사람이 지은 기몽(記夢)이라는 시에도 나온다.
神物寧久池中養 신물(神物)이 어찌 연못 속에서 오래 길러지겠는가
會作龍門燒尾鯉 용문에서 꼬리를 태운 잉어가 되어야 하리
꿈에서 연못 속 잉어가 나왔나보다.
심사정은 화보에 의해 그림을 그렸다는 혐의가 짙은 사람이니 화보에서 이 그림의 유래를 찾아보자면 고씨화보에서 유사한 도상을 찾을 수 있다.
고씨화보 약리도 도상
여러 정황상 그의 다른 그림들이 그러하듯이 이 물고기가 물 위를 튀어오르는 그림 또한 심사정이 중국으로부터 온 화보를 참고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개략적인 형식을 참고하면서 구도와 세부 묘사에서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에는 거침이 없었다.
잉어는 민물고기. 그러나 이 그림에서 일출과 파도의 모습은 이견의 여지 없이 바다의 것이다. 격랑과 기세가 충만한 바다와 자신의 제약과 조건을 뛰어넘어 버리려는 물고기의 도약은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수염을 비롯해서 잉어의 양태가 사실적이고 자유자재의 필선에서 화가의 필력이 드러난다. 적재적소에 더해진 선염, 연한 푸른 색, 상중하 3단의 능숙한 화면 분할 등에서 60이 넘은 노화가의 느긋한 공력이 보인다.
누군가는 3단 구성을 통해서 잉어가 뛰어넘어야 할 용문의 3단계 폭포를 암시한다고도 한다. 동시에 드넓은 수면과 반복적인 형태의 물결의 단조로움을 지적하기도 한다.
화제에서는 “정해년(1767년) 2월 삼현을 위해 장난삼아 그리다丁亥春仲爲三玄戱作”라고 밝히고 있어서 아마도 후배 ‘삼현’이라는 사람이 과거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게 가벼운 마음으로 그렸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삼현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환갑이 되던 해, 절정의 솜씨로 정성을 다해 그린 작품으로 심사정의 물고기 그림으로는 첫손가락에 꼽히는 그림이다.
한편. 용문에 오르지 못한 물고기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도 ‘용문점액龍門點額’이라는 말이 있다. 용문에서 이마에 점을 찍는다는 뜻인데, 용문에서 위로 오른 물고기는 용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머리를 부딪혀 이마에 점이 찍힌다, 즉 상처만 입는다는 얘기다. 과거에 낙방해 돌아오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 되어버렸다. 이마와 가슴에 상처를 입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가슴에 맺힌 한 마디. 용문점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