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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락가락하는 글자는 맨정신인가 놀이인가 - 신윤복 <청금상련>
  • 2050      

제목: 청금상련(聽琴賞蓮)
작자: 신윤복(申潤福 1758-?)
시기: 18세기후반-19세기초
재질, 크기: 지본담채 35.6x28.2cm
소장: 간송미술관


신윤복 <청금상련> 종이에 담채, 35.6x28.2cm, 간송미술관



한여름 하면 생각나는 꽃은 많다. 그중 연꽃도 빠질 수 없다. 수만 송이 연꽃으로 유명한 양수리 세미원의 관리자는 ‘아무래도 7월 말 이후가 되어야 연꽃이 만개한다’고 말한다. 연못에 연잎만 가득하고 연꽃은 그 사이로 듬성듬성 있는 것으로 보아 7월 초 정도의 모습에 가깝다. 

<청금상련>은 어느 후원에서 열린 풍류 모임을 그린 신윤복 그림이다. 인물 묘사에 천재였던 그는 특히 여인을 잘 그렸다. 하지만 산수를 비롯한 자연 경물 역시 남에게 결코 뒤지 않았다. 신윤복의 그런 면모가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누구나 여인들에게 먼저 시선을 빼앗긴 때문이다. 

여기 여인들도 당연히 다른 것 제쳐두고 시선을 잡아끈다. 트레머리는 당시 멋 좀 내는 여인의 필수 장식품이다. 장죽을 물고 있는 여인은 그 위에 가리마까지 썼다. 가리마는 당시 여인들이 예복 치장을 할 때 머리 위에 덮어쓰던 검은 헝겊 장식을 말한다. 트레머리에 가리마까지 제대로 그려낸 것만 봐도 그의 관찰, 묘사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시선 강탈자는 연못 건너편에 남정네 품에 안긴 청상(靑裳)의 여인이다. 신윤복이 살았던 시대에 여성 모델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여염집 여인네를 빤히 쳐다보는 일도 큰 실례에 속했다. 그래서 그가 그린 여인들은 대개 기생들이다. 

제아무리 기생 그림이라고 해도 남녀유별이라는 통념이 있고 또 ‘공자왈, 맹자왈’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백주에 이런 그림을 펼쳐놓고 보기에는 민망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기생 그림에는 내용과 무관해 보이는 근사한 한문 시구와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 

많은 그림에 이런 시구를 쓱쓱 적어놓은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시에 정통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시구가 자주 틀린다는 사실이다. 기생을 불러 놓고 쌍륙 놀이를 벌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다. 여기에는 북송의 문인 사마광이 지은 「겨울 밤(冬夜)」이라는 시에서 따온 구절이 적혀 있다. ‘기러기 줄지어 날아가는 소리가 역력하다(雁橫聲歷歷)’라는 것인데 이 역시 원시와 다르다. 원래는 ‘기러기 날아가는 밤하늘에 별들이 또렷하다(雁橫星歷歷)’이다(쌍륙의 말이 거문고 줄을 지탱하는 버팀대인 안족(雁足)을 닮았기 때문에 이런 시구를 떠올렸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신윤복 <쌍륙삼매> 종이에 담채, 35.6x28.2cm, 간송미술관


<청금상련>에도 오자(誤字)가 있다. 후한의 재상 공융은 풍류를 즐긴 사람이다. 그는 ‘자리에는 언제나 손님들이 가득하고 술 동이에는 술이 비지 않는 일(座上客常滿 樽中酒不空)’만 걱정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후한서』에도 실려 있고 나중에 나온 『삼국지연의』에도 보인다. 

그런데 신윤복은 이를 ‘술 속에 술이 비지 않는다(酒中酒不空)’라고 이상한 말로 바꿔 적었다. 한문을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두 글자 틀리는 정도에는 전혀 개의치 않았던 대범 무쌍한 성격이었는지 아니면 일부러 오자를 적어 넣어 사람에게 월리 찾기 같은 재미를 덤으로 더해주려고 했는지 보는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청금상련> 중 화제 부분


<청금상련>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의 묘사 외에도 7월 초의 연당 풍경 같은 정교한 관찰력 그리고 해석이 분분해지는 글귀 등으로 오랫동안 펼쳐놓고 곰곰이 감상해볼 만한 그림이다. 그런데 세상사 개떡 같은 일이 다반사라고, 작금 벌어진 일로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이 민망하게 된 것 같아 공연히 부아가 치민다.(*) 





SmartK Y.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9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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