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산방전별도(山房餞別圖)
작자: 신명준(申命準 1803-1842)
시기: 19세기
재질, 크기: 지본수묵 22.5x26.8cm
출전: 유홍준, 이태호 편 『만남과 헤어짐의 미학』(학고재 도록)
19세기 묵죽화의 대가 자하 신위(紫霞 申緯 1769-1847)의 장남이자 문인화가였던 신명준(申命準 1803-1842)이 그린 <산방전별도>이다. 그림은 야트막한 언덕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산방에서 열린 전별연의 한 장면이다. 큰 탁자를 사이에 두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고 한 사람은 서 있다.
간결한 필치에 차분한 먹색으로 문인 취향의 분위기가 물씬한 가운데 다소 어색하게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다. 벽돌을 쌓아 만든 중국식 담장과 문이다. 그러고 보면 돌계단 위의 전각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거기에 더해 이 그림에는 낙관과 인장도 색다른 면이 있다. ‘산방전별도’라고 한 제목 과 별도로 ‘명준공사(命準恭寫)’라고 관서를 쓰고 그 옆에 도장 2방을 찍었다. 하나는 ‘신명준인(申命準印)’이고 다른 하나는 ‘정평(正平)’이다. 정평은 그의 자(字)다. ‘받들어 그린다’는 ‘공사’라는 말은 잘 쓰이는 말은 아니나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다면 없다.
그런데 오른쪽 아래에 찍힌 도장의 글귀가 ‘소재묵연(蘇齋墨緣)’이다. '소재'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반에 걸쳐 중국 문화에 관심이 있던 조선의 문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던 중국의 석학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의 호다. 소재묵연이란 그와 관련된 한묵(翰墨)의 인연을 말한다.
명준의 아버지 신자하는 한중 문화교류가 절정에 이른 19세기 초에(정확히는 1812년) 연행 길에 올라 옹방강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자하는 추사의 소개장을 들고 찾아갔는데 이때 소재로부터 ‘시는 북송의 소식을 공부해 당나라 두보로 나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해 받았다. 자하는 북경에 가기 전에 이미 조선에서 유명한 시인이었다.
이 만남에서 크게 깨우친 자하는 돌아오는 길로 예전에 지은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다고 한다. ‘소재묵연’은 그와 같은 인연 때문에 그가 새겨 쓴 인장이다. 이 인장과 ‘명준공사’ 즉 ‘명준이 받들어 그리다’라는 관서 내용을 연관시키면 이 그림은 아버지의 명을 받아 연행과 관련된 어떤 한 장면을 그린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신명준은 호를 소하(少霞)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를 깊이 믿고 따랐다. ‘소재묵연’ 인장도 함께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이렇게 되면 그림을 어떻게 그리게 됐는지에 대한 문제가 좀 애매하게 된다. 부친의 명일 수도 있고 혹시 부친 주변인사의 연행에 관련된 그림일 수도 있게 된다. 그러고 보면 복장도 한국식 두루마기보다는 어딘가 중국 차림처럼 보인다.
옛 그림은 정답이 없는 그림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이런저런 사실을 짝 맞추면서 해석을 궁리하는 것이 그림 감상의 묘미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 해석을 하나 더할 일도 있다. 그림 한복판에 찍힌 뜻 모를 검정 먹 점 하나다. 신명준이 그림을 그리다 먹물 한 방울을 잘못 떨어진 것인가. 아니면 훗날 사람의 부주의인가. 물론 여기에도 답은 없다. 다만 좋았던 시절 중국과의 교류의 한 장면을 그린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새삼 이 그림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신자하나 신명준 시대의 중국 인상이 근래 들어 점점 이상하게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