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강아지와 잠자리(狗子圖)
작자: 미상
시기: 18세기
재질과 크기: 견본채색 83.5x35.2cm
출전: 『화훼 초충-꽃과 벌레가 꾸미는 조선미술전』(교토 고려미술관 도록)
그런 따끈따끈한 볕이 상상되는 한낮에 우리 검둥이는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다. 반쯤 입을 벌리고 시선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잠자리 한 쌍이다. 잠자리도 끼리끼리 어울릴 테지만 그림 속에는 청홍의 한 쌍이 그려져 있다. 새파란 눈을 가진 잠자리(청동 잠자리인 듯)는 위에 있고 붉은 고추잠자리는 아래에서 윙윙거린다.
붉은 맨드라미와 흰 들국화를 배경으로 짝지어 나는 잠자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작은 강아지 그림은 분류로 보면 애매하다. 일반 화조도는 아니며 또 풀벌레만 나오는 초충도도 아니다. 분류만 애매할 뿐 아니라 상징도 뒤죽박죽이다. 맨드라미는 벼슬을 뜻하지만 들국화는 포의(布衣), 즉 재야를 상징한다. 거기에 개는 충성이고 잠자리는 부지런함이다.
분류야 상징이야 어떻든 아름다운 꽃을 배경으로 벌레와 작은 짐승이 이야기를 엮는 듯한 모습은 무엇보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랑놀이에 빠진 잠자리를 쳐다보는 강아지는 무슨 생각 중일까. 조선 후기의 한 시절에는 이처럼 보는 재미에 포커스를 맞춘 그림이 종종 그려졌다. 이는 엄숙하고 고상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산수화와는 전혀 다른 세계이다. 눈앞의 현실을 긍정해야만 그릴 수 있는 세계이다. 또 그 속에서 아름다움도 찾고 재미도 추구하는 세속적 정신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그림이다.
한문에 비유하면 순정 고문(古文)주의자 눈에 한심하고 쓸모없는 글로 비친 소품문(小品文)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작은 이야기가 담긴 듯이 상큼한 느낌의 이런 그림 세계는 19세기 들어 세도족벌 정치가 만연하는 가운데 복고풍 산수화가 재차 유행하면서 역사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