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록(新綠)
필자: 노수현(1899-1978)
연대: 1920년대
재질과 크기: 비단에 채색, 204x312cm
소장: 고려대학교박물관
전시: 근대서화(국립중앙박물관 2019.4.16-6.2)
제목 그대로 온 산에 그리고 온 들에 파랗다. 봄이 돌아와 가지의 새싹과 밭두렁의 새잎으로 온천지가 초록으로 물든 산골 정경이다. 멀리 보이는 개울의 물이 한층 불었고 밭두둑에는 일 나가는 농부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인다.
하얀 물줄기 몇몇과 앞쪽 언덕에 살구꽃인지 자두꽃인지 모를 새로 핀 희고 노르스름한 꽃송이들을 제외하면 온통 파랗다. 하늘조차 초록 물이 든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초록으로 소생한 싱그러운 봄날의 기운이 그림 밖으로 뻗쳐 흘러나올 것만 같은 박력이다. 눈에 비친 대자연의 섭리를 하나라도 놓칠세라 치밀하게 사실적으로 그린 묘사는 화면 전체의 생기를 한층 더해준다.
이 그림을 그렸을 때 화가는 20대를 조금 넘겼을 때다. 말 그대로 인생의 스타트 지점에 서서 청춘을 맞이하고 있었다. 앞날의 삶이 어찌 되었든 생의 한복판으로 돌진하려는 의기와 의지가 가슴에 충만해 있었을 것이다. 또 머리에도 미래에 대한 뜨거운 포부와 구상으로 꽉 차있었을 지도 모른다.
화가 노수현는 구한말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활동한 안중식의 마지막 제자이다. 안중식이 제자에게 근대의 어떤 모습을 손짓해 보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그는 스승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이처럼 엄청나게 큰 화면을 상대로 생기가 흘러넘치는 대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내는데 성공했다. 아쉽게도 성공은 여기까지였다. 이 그림에 대해 당시의 평가와 찬사는 전하지 않는다. 남겨진 그의 그림 중에 이와 같은 모습이 다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그는 어느 시점에서 이를 버리고 다른 길로 간 듯하다.
역사에 만약이 없다지만 만일 그가 이 길로 곧장 달려갔더라면 이후의 한국 그림은 정말 크게 다른 신천지를 열어보였을 것이다.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