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국접도(菊蝶圖)
화가: 홍낙최(洪樂最)
연대: 1751년
크기: 61.2x39.0cm
재료: 비단에 채색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달빛 아래 형제가 서로 볏단을 지고 형에게, 아우에게 가져다주다가 딱 마주쳤다는 의좋은 형제 이야기가 무색하게 형제간의 싸움이 작금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마땅히 부끄러운 일이겠지.
조선 르네상스라는 18세기 한가운데에 그림으로 의좋은 모습을 보인 형제들이 있다. 서울의 홍씨 재상집안 4형제로 이들의 부친 홍상한(1701-1769)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뒤 영조 시대에 문신으로 승승장구해 예조, 형조, 병조 판서를 거치고 종1품의 판돈녕부사에까지 올랐다.
그림은 그의 네 아들이 모두 달라붙어 만든 것으로 1751년에 제작됐다. 당시 17살인 막내(홍낙최)가 우선 그림을 그리고 30살의 둘째(홍낙명)가 화제(畵題)를 짓고 18살인 셋째(홍낙삼)가 글을 썼으며 그리고 제일 맏이인 큰형(홍낙성)이 제작의 경위를 밝힌 발문을 적었다.
그림의 내용은 아쉽게도 봄이 아닌 어느 가을날 정원 모습이다. 소담하게 핀 국화꽃 위에 나비가 한 마리 앉아 있고 아래에는 여치가 와서 기웃거리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17살의 서생이 그린 그림치고 정교하기가 이를 데 없다.(꽃과 괴석을 잘 그렸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그의 그림은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화제에는 국화로 상징되는 은둔의 삶이 자신에게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고민한 것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큰형의 발문은 여러 동생들이 솜씨를 발휘했으니 나는 경위나 밝히는 정도에 만족한다는 내용이다.
막내가 이 그림을 그렸을 때 큰 형은 이미 과거에 급제해 중앙 관로에서 활동 중이었다. 둘째 형은 화제를 지은 3년 뒤에 역시 과거에 급제했다. 이후 큰형은 정조때 영의정까지 올랐고 둘째형은 병조판서까지 지냈다. 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과거를 보지 않은 채 23살로 요절했다.
아마도 남은 형들은 이따금씩 한데 모여 그림을 펼쳐보면서 청운의 꿈을 채 펼쳐보지도 못하고 죽은 동생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의좋은 형제들이 정말 그리운 시절이 됐다.(이 그림에 관한 자세한 해설은 국립중앙박물관 이재호 학예연구사가 『미술자료』에 쓴 「풍산홍씨 네형제가 제작한 국접도」에 잘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