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정선 <춘경산수도> ≪사계산수화첩≫ 30x53.3cm 호림미술관
1719년,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사계산수화첩> 또는 <기해년화첩>에 들어 있는 <춘경산수> 즉, 봄의 경치를 그린 산수도입니다. 가로로 넓은 화폭의 가운데 근경으로 푸릇푸릇 잎이 돋아나는 나무 몇 그루와 건물이 하나 보이고, 다리로 연결된 강건너 멀리 마을과 작은 언덕, 오른쪽의 절벽, 안개 너머 원경에 흐릿하게 산이 겹쳐지는 휑하리만치 조용한 봄의 풍경입니다.
기해년 44세의 정선은 이하곤(李夏坤 1677∼1724)이라는 문인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자면서 이 봄의 풍경과 함께 4계절의 산수화를 남겼습니다. 이하곤은 장서를 1만권 가졌던 것으로도 유명한 사람인데, 벼슬에서는 일부러 물러나 학문과 서화에 힘썼던 수집가/평론가였습니다. 집안도 빵빵해서 할아버지는 좌의정, 고모부는 영의정, 아버지는 이조판서에 올랐고 자신이 장남이었지만 대부분의 생애를 은둔하며 살았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시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 화가였던 윤두서, 서예가 윤순과의 교유가 유명했습니다.
특히 이병연은 이하곤의 재종 형이기도 했으며 평생 시로 사귄 벗이었는데, 이병연과 겸재 정선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절친 관계였습니다. 이하곤이 1714년 이병연을 방문했다가 소장하고 있던 정선의 산수화를 보면서 둘의 관계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둘의 관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714년 3월 이병연이 있는 금화에서 이병연 소장 정선의 산수화를 봄
1715년 이병연 소장 <해악전신첩>에 발문
1715년 5월 이병연 소장 망천저도를 더욱 빼어나다고 평
1719년 10월. 정선이 이하곤 집에서 함께 자면서 <산수화권>을 그림
1719년 정선의 산수도에 제함
1720년 정선의 부채그림에 제시
1721년 정선의 사시병 그림에 제
1721 정선이 하양현감 나갈 때 전별시 씀
1722 김광수 소장 정선의 <망천도>에 글
겸재는 36세 무렵에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중국 화보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하곤은 정선이 형사에 치우친 진경을 그리기보다 사의를 펼쳐내기를 요구한 적이 몇 차례 있습니다. 그날 몸이 아픈 이하곤을 문병하러 가서 하룻밤을 잤다고 하는데, 정선은 이하곤의 취향을 배려해서 진경이 아닌 사계를 그린 것일까요? 예술과 문학에 심취했던 그 친구들이 어떤 이야기로 밤을 지샜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