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겸 <한산제승당도閑山制勝堂圖> 종이에 수묵담채, 30.1x45.5cm, 도쿄국립박물관
제승당은 통영 앞바다 한산도에 있는 건물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 한산대첩 이후 이순신이 지은 것으로, 정유재란 때 소실되기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유서 깊은 곳입니다.
이후 영조 때 통제사가 다시 지었고 1963년 대한민국 정부가 사적으로 지정, 보수하며 관리해 왔는데, 현재의 건물은 1976년 중건한 것입니다.
이곳의 바다 빛깔을 비롯해서 풍광이 좋기는 말할 필요도 없고 역사가 말해주는 이야기로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하지요. 꼭 한번 가볼만한 곳입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인 김윤겸(金允謙, 1711-1775)이 이곳을 그렸습니다.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의 <한산제승당도>.
일본과의 바다에서의 피터지는 전쟁이 남긴 역사적인 장소의 그림이 일본의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정선을 이어 진경산수에 골몰했던 화가로서 그는 한산도와 제승당을 어떻게 화폭에 담을 것인지 고민했을 것입니다.
왼쪽 아래에 건물들이 있고, 그곳에 자리잡은 수군이 우묵한 한산섬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섬들이 가득한 통영 앞 맑은 바다, 그러나 거세게 부딪히는 파도를 헤치고 들어가 안쪽으로 숨듯이 자리잡은 수군통제영의 모습입니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 평화로이 훈련에 임하는 군사들, 해안에 부딪히는 포말, 정선의 영향이 드러나는 나무가 가득한 섬의 언덕, 원경을 이루는 희미한 먼 섬 등을 차분한 필치로 그려냈습니다.
말마따나 '화격'이 정선에 못 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개성을 드러낸 맑은 화풍이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김윤겸은 권세가인 안동 김씨의 서얼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 김창업(金昌業)은 노론의 정치가 김수항(金壽恒)의 넷째아들로 시에 뛰어났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김창업의 연행록은 상세한 기록으로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김수항의 조부, 즉 김윤겸의 고조부는 척화대신으로 유명한 김상헌입니다.)
아버지 김창업은 학업에 방해가 된다 하여 그림을 많이 남기지 못했지만, 그림 재주와 취향이 서자인 김윤겸에게 이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