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훈, <궐어도> 19세기 후반, 비단에 먹, 직경 21.7cm, 호림박물관
물고기가 주인공인 그림입니다. 수초 위로 당당하게 자리하는 물고기가 있고, 옅은 먹으로 다섯 마리가 더 지나갑니다. 위쪽에는 흰 꽃이 핀 가지가 보입니다. 나뭇가지는 물 바깥의 평범한 시선같은데, 배경의 물고기들은 수면을 내려다 본 시선, 큰 물고기는 물 속에서 본 시선 같이 표현되어 흥미롭습니다.
화면 좌측에는 “桃花流水鱖魚肥” 즉, ‘복숭아꽃이 흐르는 물에 쏘가리 살쪘구나’라는 싯구가 써 있어 이 물고기가 쏘가리라는 것, 상단의 꽃가지는 복숭아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쏘가리를 의미하는 한자 궐鱖은 궁궐의 궐闕과 음이 같아서 과거에 급제하여 궁궐에 들어가길 기원하며 쏘가리 그림을 그려 두곤 했지요. 요즘으로 말하자면 고위급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인데, 아무리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이러한 권력은 많은 사람들의 꿈으로 남아 있으니 궐어도 또한 아직 가치부여할 만한 그림이 아닐까도 싶습니다. 어쨌거나 의로운 사람이 출세하고 성공하기를.
화제 끝에는 石然이라는 호가 적혀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석연 양기훈(楊基薰, 1843-1911)으로, 기러기를 그린 노안도가 많이 남아 있어 유명합니다. 평양 출신의 도화서 화원인데 평양과 서울, 말년에는 일본에서까지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근대 평양 화단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화제의 시는 당나라 시인 장지화(張志和, 732-810)의 어부가입니다. 찍혀 있는 인장은 화제 아래에 주문방인 石然, 楊基薰印이 있고, 낙관의 시작 부분의 유인遊印으로는 깃털같기도 한 나뭇잎 모양에 숨은그림처럼 글씨를 새긴 四時春이라는 글귀를 적은 사구인詞句印이 있습니다. 사시사철 봄 같은 기분으로 지낼 수 있도록 새해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