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강남춘의도(江南春意圖)
작자/ 김광국(金光國 1727-1797)
연도/ 1796년
크기/ 43.3x29.5cm
소재/ 종이에 담채
소장/ 국립중앙박물관(『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전 출품)
김광국 <강남춘의도> 1796년, 종이에 담채, 43.3x29.5cm,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문화의 르네상스라는 18세기가 되면 그림 감상이 크게 유행합니다. 문인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그림 좀 볼 줄 아는 게 교양인의 상징처럼 됐습니다. 그래서 이때가 되면 왕족 이외의 대수장가도 나오게 됩니다.
대대로 의원집안 출신에 본인도 내의(內醫)였던 김광국은 18세기를 대표하는 대컬렉터입니다. 그는 꼼꼼한 성격입니다. 자기가 모은 그림에 하나하나 평을 적었습니다. 그 내용이 필사본으로 전하는데 무려 267점이나 모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림을 잘 보려면 많이 봐라’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많이 보면 문리(文理)트이듯이 화리(畵理)가 트인다는 것이지요. 김광국에게 화리가 트였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이 정도면' 하고 자신이 붓을 잡아 그린 그림이 한두 점 전합니다.
그는 어느 우울한 가을날 혼자 술을 마시고 작은 종이를 꺼내 난초 하나를 그렸습니다. 그리고는 옆에 ‘마음속의 기분을 그려냈을 뿐 부들이 된들 난초가 된들 내가 구별할 필요가 있겠는가’라고 호기롭게 썼습니다.
이 그림은 강가 풍경을 그린 것입니다. 연두색을 점을 자주 찍고 풀도 푸르게 그려 이제 막 봄이 시작되는 분위기를 그린 것입니다. 그런데 원본이 있습니다. 그림 속 글을 보면 명나라화가 두기룡(杜冀龍)의 <강남춘>을 보고 그 필치로 그렸다고 했습니다.
당시 김광국과 가까웠던 심사정(沈師正 1707-1769)도 두기룡의 이 그림을 가지고 봄 안개에 감싸인 강남 풍경을 근사하게 그린 것도 전합니다. 직업적인 인기 화가와 여기(餘技) 화가에는 차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뭣이 중헌디, 그림이란 기분을 그리는 것일 뿐’이라는 일갈이 옛 그림이 어렵다는 멈칫거리는 현대인들 들으라고 한 말처럼도 여겨집니다.(y)
심사정 <강남춘의도> 비단에 담채, 43.5x22.0cm, 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