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범사도(泛槎圖)
작자/ 혜산 유숙(惠山 劉淑 1713-1791)
제작시기/ 1858년
크기/ 15.3x25.3cm
소재/ 종이에 담채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옛 그림에 배가 종종 등장합니다. 나무꾼과 나란히 은자 대접을 받는 어부가 한 사람 앉아 한가롭게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작은 조각배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배는 사뭇 모습이 다릅니다. 무엇을 보고 그렸는지 쉽게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관광지 유람선처럼 수차가 있습니다. 앞쪽 것은 돌아가고 있지만 뒤쪽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넘실거리는 파도가 그려져 있을 뿐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 한가운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칼을 치켜들고 있습니다. 또 파도위에는 길고 검은 기둥이 떠있습니다. 파도 묘사가 일품인데 실은 폭풍에 거칠 대로 거칠어진 바다를 그린 것입니다.
낙관에는 ‘소당(小棠)에게 그려준다’고 했는데 소당의 부친 김계운(金繼運)은 표류하는 이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일본어 역관인 그는 1856년 봄에 일본의 관백(關白) 습위(襲位)의 축하를 위해 대마도에 갔다가 그해 여름에 귀국했습니다.
돌아올 때 큰 폭풍을 만나 표류하게 됐습니다. 이때 배에 타고 있던 일본사람 하나가 칼을 빼 돛을 잘라내서 파도에 휩쓸리는 것을 막았다고 합니다. 잘려져 나간 돛이 파도위에 떠있습니다.
그림은 바로 그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소당 김석준(金奭準)은 이를 그린 유숙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입니다. 그는 부친의 경험담을 늘 입에 달고 다니면서 유숙에게 그림을 부탁한 것입니다. 때가 때라서인지 폭풍 속에 표류하는 배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