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는 역관, 부친부터 화원으로 활동한 집안으로, 조희룡, 허련, 전기, 유숙, 유재소, 김수철, 박인석, 조중묵, 방윤명 등 많은 화가들과 교유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당시 초상화로 명성이 있어 어진 제작의 주관화사로 여러 번 참여하였고 이하응, 김정희, 권돈인 등 동시대 인물들 뿐 아니라 정몽주, 이항복 등 역사적 인물들의 초상을 그렸다.
38세 때인 1849년 가을 제주도 유배에서 돌아온 김정희에게 당시 여러 화가들과 함께 작품 품평을 받은 일이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에 남아 있다. 김홍도의 영향을 받은 산수화와 청의 화풍 등 다양한 산수화와 신선도, 고사인물도, 화조영모화 등을 남겨 19세기를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