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시대 화가 히라후쿠 스이안(平福穂庵)의 아들. 어려서 부친을 잃은 뒤 화본을 통해 마루야마 시조파(円山四条派)를 배웠다. 17살에 상경해 시조파 출신의 가와바타 교쿠도(川端玉章)의 내제자로 들어가 본격적인 수업을 쌓았다. 당시 선배로 유키 소메이(結城素明)가 있었다. 이 무렵 역사화를 주로 그리며 여러 전시에 출품하면서 수상 경력을 쌓았다. 1897년 도쿄미술학교에 입학해 고사카 쇼도(小坂象堂) 교수의 서양화식 사실주의 화풍을 처음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이후 평생 이 화풍을 견지했다. 졸업 이후에 유키 소메이 등과 함께 무성회(无声会)를 결성해 오카쿠라 덴신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일본미술원의 낭만주의적 역사화와 대조적인 사생에 기초한 자연주의적 일본화의 세계를 지향했다. 무성회 해산 이후 유키 소메이, 가부라키 기요카타(鏑木淸方), 깃카와 레이카(吉川靈華) 등과 함께 금령사(金鈴社)를 결성했다. 한편 단가에도 몰두해 아라라기 파의 시인으로도 활동하며 단가집도 남겼다. 1933년 제국미술전 회원과 심사위원이 되었으며 도쿄미술학교 교수로 임명됐으나 이해 갑자기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