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와 동향. 해군병학교 영어교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3살때 도쿄로 이주해 아자부(麻布)에서 자랐다. 메이지학원에 입학하면서 동창 미야케 곳키(三宅克己)를 통해 처음 서양화를 접했다. 소설가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는 선배. 1891년 학교를 중퇴하고 소야마 유키히코(曾山幸彦), 하라다 나오지로(原田直次郞)에게 본격적으로 서양화를 배웠다. 이 무렵 일본화가 구보타 베이센(久保田米遷)에게도 배웠다. 하라다 화숙이 문을 닫게 되자 구로다와 구메 게이치로(久米桂一郞)의 천진도장(天眞道場)에 다니며 처음 외광파 화풍을 접했다. 훗날 구로다는 당시의 그를 가리켜 ‘천재급의 배움 속도를 가졌다’고 하며 ‘처음에 문인(門人), 제자로 만났으나 그것은 1,2년에 불과했고 곧 화우가 됐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896년 백마회 결성 이후 회원으로 활동했다. 1897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동양미술 컬렉터 아돌프 피셔가 일본에 왔을 때 구로다의 소개로 6개월 동안 일본 각지를 안내하며 수행했다. 피셔는 1899년 일본에서 구입한 미술품 정리를 위해 와다를 베를린으로 불러 이때 처음으로 유럽을 여행했다. 당시 정리한 600여 점의 일본미술품은 다음해 구스타프 클림트가 회장으로 있던 빈 분리파 제6회 전시에 출품, 소개됐다. 1900년 문부성 유학생으로 선발돼 프랑스에 유학, 라파엘 코랑에 사사했다. 당시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의 그랑 팔레 전시장에는 도쿄미술학교의 졸업작품으로 그가 가져간 <나루터의 저녁놀>이 코랑의 주선으로 걸리기도 했다. 1902년 살롱전에는 <고향생각(思鄕)>을 출품해 일본인 화가로는 고세다 요시마쓰(五姓田義松) 후지 마사조(藤雅三), 구로다에 이어 4번째로 입선했다. 1903년 귀국해서는 파리의 위젠 그라세에게 배운 아르누보 스타일의 디자인 재능을 선보이는 한편 백마회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32년 도쿄미술학교 교장에 취임했으며 1943년 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