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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 미츠타니 구니시로 [ 滿谷国四郞 ]
  •   
생몰년
1874-1936
한자
滿谷国四郞
이름
みつたに くにしろうKunishirō Mitsutani
근대 서양화가. 오카야마(岡山)현 소자(総社) 출신.
1874년 중학 3년를 중퇴하고 화가가 되기 위해 상경, 초대 고세다 호류(五姓田芳柳)의 문하에 들어갔다. 이후 고야마 쇼타로(小山正太郎)의 화숙으로 옮겨 사실주의 화풍을 수련했다. 1898년 메이지미술회 창립10주년 기념전에 출품한 <하야시 대위의 전사도>가 메이지 천왕 눈에 들며 궁내청이 구입하게 돼 화가로서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전쟁을 테마로 한 사실적인 그림은 이후도 계속 그려 구니키다 돗포(国木田独歩)가 주관하는 『전시화보』에 전쟁을 소재로 한 삽화를 연재하기도 했다. 1900년에 파리를 여행했으며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는 메이지 미술회를 계승한 태평양화회(太平洋畵會)의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1907년 문부성 전람회(文展)이 창설되면서 계속해서 심사위원을 맡았다. 이 무렵부터 생활주변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11년에 오카야마 출신의 실업가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의 후원으로 두 번째로 파리로 건너가 당시 유행하던 인상파 회화와 상징주의 회화에 영향을 받았다. 귀국해서는 서양 근대회화의 길을 버리고 일본적인 서양화 세계의 구축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네 번에 걸쳐 중국을 여행하면서 메이지 시대의 아카데미즘에서 탈피해 유화이면서도 동양화적인 차분한 분위기와 기품이 담긴 작품을 제작하고자 애썼다. 1925년 제국미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태평양화회 연구소를 통해 오카야마 출신의 요시다 시게루(吉田苞) 유노키 규타(柚木久太) 가타오카 긴조(片岡銀蔵) 미야케 엔페이(三宅円平) 등의 후진을 지도했다.

<붉은 융단(緋毛氈)>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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