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슈 도쿠가와(紀州德川) 가문에 속한 대대로 노(能) 악사 집안 출신. 유신 이후 생계를 위해 부친이 전각을 익혀 큰형과 작은 형은 나중에 전각가로 활동했다. 9살 때 가족 모두가 상경하면서 자신은 가노 호가이(狩野芳崖) 문하로 들어갔다. 5년 뒤에 다시 하시모토 가호(橋本雅邦)에 사사하면서 가노파와 야마토에(大和繪) 기법을 익혔다. 1889년 동경미술학교가 설립되면서 제1기로 입학해 가호와 함깨 오카쿠라 덴신(角倉天心) 그리고 페놀로사의 지도를 받았다. 졸업한 뒤에는 덴신의 추천으로 바로 조교수가 돼 학교에 남았다. 그후 덴신이 교장직을 물러날 때 가호 등과 함께 나와 일본미술원 결성에 참가했다.
일본미술원 시절 요코야마 다이칸(橫山大觀), 히시다 슌쇼(菱田春草)와 함께 3걸로 불리며 몽롱체 화풍을 소개하는 일의 선두에 섰다. 몽롱체는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의 외광파에 대항하기 위해 덴신이 모색한 새로운 일본 화풍이라고도 할 수 있다. 1903년 문부성 유학생으로 영국에 건너가 라파엘로, 다빈치 등의 고전 거장과 라파엘 전파의 존 에버렛 밀레이 등의 작품을 접하며 고전 회화와 그 복고적 가치에 눈을 떴다. 귀국후 1907년에 열린 제1회 문전에 <숲속의 가을>을 출품, 야마토에와 린파(琳派)의 전통을 계승한 또 다른 면모의 일본화를 선보였다. 덴신 사후에 재건된 일본미술원을 다이칸과 함께 이끌며 <흰여우(白狐)> <약법사(弱法師)> <봄비(春雨)> 등의 대표작을 발표했다. 만년까지 일본미술원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1917년 제국기예원이 선정됐다.
*약법사(뵤로보시): 계모의 저주로 눈이 멀어 거지가 되었다가 관음보살의 공덕으로 눈을 뜨게 된 다카야스장자(高安長者)의 전설을 소재로 한 악극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