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은 여인숙, 마방 등을 운영하던 상가. 소년시절 부친의 반대를 뿌리치고 나카마로 세지로(中丸精十郞)의 화실을 다니며 서양화를 익혔다. 부친이 죽은 뒤 정식으로 하라다 나오지로(原田直次郞) 문하에서 본격적인 수업을 쌓았다. 하라다를 통해 모리 오가이(森鷗外)를 알게 됐으며 오가이 주변의 명사들인 지리학자 시가 나오다카(志賀重昻), 민속학자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 소설가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牧野富太郞) 등을 가까이 접하며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 그리고 관찰의 중요성 등을 체득했다. 1898년 반년 동안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며 공간과 자연의 색채감을 실감했다. 이 무렵부터 인상파적인 수채묘사 기법이 두드러졌다. 수채화에의 관심은 20대 초에 영국 수채화가 알프레드 파슨즈(Alfred William Parsons)와 존 바레이(John Varley)가 일본을 여행하며 수채화 전시회를 개최해 화제가 된 것이 시초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여행 이후 풍경화가로서 국내 각지를 여행하며 사생과 묘사기법을 연구했다. 1903년에는 바르비종파처럼 아오미(靑海)로 거처를 옮겨 자연 속에 들어가 작품 생활을 했다. 이 무렵 등산가이자 일본산악회 설립 멤버인 고지마 우스이(小島烏水)를 알게 돼 심산유곡까지 등산하며 이를 풍경화를 제작했다. 수채화 풍경작품은 메이지미술회, 태평양화회, 문전 등에 출품하면서 대중들에게 수채화를 소개하는 계기가 됐다. 1901년에 수채화 기법서인 『수채화 가이드북(水彩之栞)』을 출판해 베스트셀러가 됐고 1905년에는 수채화 보급을 위한 잡지 『미즈에(みづえ)』의 창간에 관여했다. 수채화 이해와 보급을 위해 각지에서 강연회를 여는 한편 전문학교인 일본수채화연구소(1907)도 설립했다. 이로 인해 1913년에 일본수채화회가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