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양화가이자 귀족원 의원을 역임한 정치가. 작위는 자작(子爵). 본명은 기요테루로 읽으며 세이키는 화명. 가고시마 출신.
양부 구로다 기요쓰나(黑田淸綱)은 사쓰마번 출신의 자작으로 추밀원 고문을 지냈다. 1884년 법률을 공부하러 프랑스로 건너갔으나 반년 뒤 화가 야마모토 호스이(山本芳翠)를 만나 미술 공부를 권유받으며 전향, 라파엘 코랑에 사사했다. 당시 파리는 고호, 세잔, 쇠라 등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활동중이었지만 아카데믹한 고전주의에 인상파의 외광 묘사를 절충한 코랑 화풍을 학습했다. 졸업작품이자 프랑스 살롱전 입상작인 <아침화장(朝妝)>은 일본에 가져와 1895년 교토에서 열린 제4회 내국권업박람회에 출품했을 때 나체화라는 비난과 함께 큰 사회적 화제가 됐다. 1893년 귀국한 뒤에는 야마모토 호스이가 열고 있던 화실 세이코칸(生巧館)을 물려 받아 유학시절 함께 생활한 구메 게이치로(久米桂一郞)와 천진화실(天眞道場)을 열어 활동했다. 이후 메이지미술회에서 독립하면서 신파 화가들과 함께 백마회(白馬會)를 설립했다. 백마회에서는 일상생활을 소재로 외광을 받아들여 밝게 묘사하는 그림을 발표해 외광파(外光派)로 불리며 화단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동경미술학교에 서양화과가 발족한 뒤 교수로 발탁됐으며 이후 1910년 양화가로는 최초로 제실예원원(帝室技藝員)에 뽑혔다. 제국미술원에는 원장까지 역임했으며 1917년 양부의 뒤를 이어 자작 작위를 계승했고 1920년에는 귀족원 위원에 취임했다. 대표작으로 <아침 화장> <호반> <지·감·정(智·感·情)> <독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