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은 오카야마 번사로 메이지유신 이후 육군소장까지 오른 하라다 이치도(原田一道)이며 형은 지질학자 도요키치(豊吉)이다. 동경외국어학교 불문과 재학시절 하코네 수학여행에서 스케치 여행을 온 다카하지 유이치(高橋由一)과 아사이 주(淺井忠)을 만나 다카하시의 덴카이학사(天繪學舍)에 들어가 1년간 양화를 배웠다. 1884년에, 앞서 독일 유학중이던 큰형의 권유로 유학길에 올라 뮌헨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뮌헨에서는 가브리엘 막스에 사사하며 아카데미즘 외에 독일낭만주의 화풍을 익혔다. 이 시절 그림이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구둣방 주인>이다. 또 이때 육군성 유학생으로 뮌헨에 와있던 모리 오가이(森鷗外 1862-1922, 육군 군의감이자 소설가)를 알게 돼 평생 친교를 나누었다. 오가이의 소설에는 그를 모델로 한 작품이 있다.
귀국후에 메이지미술회에 참가하는 한편 내국권업박람회 등에 작품을 출품하며 활동했다. 또다른 대표작 <기룡관음(騎龍觀音)>은 1890년 제3회 내국권업박람회에 출품한 대작이다. 이 그림을 놓고 메이지미술회 찬조회원이자 동경대교수인 도야마 마사카즈(外山正一)가 소재와 사상의 빈곤이라고 비난하자 모리 오가이가 이를 옹호하는 주장을 펼쳐 이른바 역사화 논쟁을 벌어졌다. 1893년 병으로 쓰러진 이후 병상에서도 그림을 그렸으나 마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는 바람에 전하는 그림이 많지 않다.